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필영 May 01. 2024

엄마가 다 해줄게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하기 싫어했던 모든 것들을 하게 되었다. 종이접기 같은 것들. 아이의 선생님은 아이의 자리 옆에 서서, 아이가 그 일을 끝내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고 했다. 아이는 그런 선생님을 무서워했지만 두 달 정도가 지나자 아이는 어느 정도 학교수업, 즉 학교의 시스템에 따라가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선생님께 전화로 들은 내용이다. 아이가 애처롭고 슬펐지만 아이에게 오히려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시간에 맞춰 끝내게 약간의 압박을 주는 선생님을 만난 게 아이에게는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엄마로서 아이의 힘든 눈동자를 매일 마주하는 건 두 달 동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엄마가 다 해줄게. 색종이 접기 그거 뭐 별거라고. 엄마에겐 쉬운 일이야. 수학 문제 푸는 거? 엄마가 다 해줄게. 이건 글씨를 찾는 거구나. 이것도 해줄게. 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아이가 결국 끝까지 완성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연재를 하다가 글이 안 써지면 어떻게 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어이없는 웃음. 질문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런 어떻게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긴 뭘 어떻게인가. 그냥 써야지. 그냥 내야지. 뭐라도 쓰고,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다. 그것은 나의 일이기에. 아무도 책임져줄 수 없다. 그때 그분께 아마도 내가 이렇게 답을 했던 것 같다.     





 “글쎄요. 만약 제가 수업을 하는 강사인데 수업을 못하겠다고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올 수는 없는 것처럼 당연히 무조건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은 오히려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만약 안 써진다면 안 써진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써야겠죠. 마음에 안 드는 글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저의 한계인 거죠.”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나 역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      






나는 글을 쓰고 글쓰기 수업을 하고 돈을 번다. 이 모든 행위가 사실 최근 몇 년 아주 잘 된 건 사실이지만 한순간에 모두 망한다고 해도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 나갈 것이다. 그게 뭐가 되었든,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면 손님이 원하는 담배를 빠르게 찾게 되길 연습할 것이고, 커피숍이라면 커피 레시피를 연습하고 손님이 지나간 테이블을 잘 닦아야지. 식당에서 일하면 자리마다 번호를 잘 외우고 음식을 빨리 갖다 드려야지. (설거지나 뭐 주방에서 하는 일은 너무 못하니 그래 그런 일은 그냥 하지 말자.. 만약이라도 하지 말자..)  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고, 긴 말을 집중해서 들어줄 수 있다. 일을 할 때 상냥하다. 분명 서류를 정리하거나 하는 일들을 잘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일은 잘할 수 있다.    






아이는 두 달 동안 수학문제가 어떤 식으로 풀리는지, 동그라미가 번호이고 그 옆 숫자에서 답을 골라야 하는 걸 알게 되었고 풀이과정을 쓰시오 라는 말의 30% 정도를 이해했다. 한글을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씻습니다에서는 받침이 시옷, 했습니다 에서는 받침이 쌍시옷임을 알게 되었다. 스무고개라는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었고 끝말잇기에서 균형이나 규칙 같은 눈에 그려지지 않는 단어도 곧잘 말하게 되었다. 방과 후 수업의 영향인지 아이돌 댄스도 조금씩 추게 되었고 줄넘기를 일곱 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잘 되지 않는 것은 학교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입력과 동시에 출력(행동)하는 것.      





아이는 매일 아침 반에서 제일 일찍 혹은 두세 번째로 등교한다. 교문에서 나는 아이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아이는 나를 보고 웃으며 파이팅을 따라 한다. 나는 그 웃음을 곱씹으며 내게 주어진 장소로 향한다. 그것이 글이 되었든 누군가와의 독서 모임이 되었든 수업이 되었든 도망치지 않겠다. 나는 부딪치고 실수하고 실패한다. 아이 역시 그러하다.     

나처럼 느린 첫째, 나처럼 고집이 강한 첫째. 무엇보다 나처럼 씩씩한 첫째.      



작가의 이전글 처음에 이런 거 다 배우고 글쓰기 시작하셨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