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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적성해 Aug 29. 2021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천리마와 백락

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천리마상유 이백락불상유)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그를 알아보는 백락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천리마는 장수들이 너무나 탐을 내었던 말이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알아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백락은 원래는 天馬(천마)를 관장하는 신 이름인데, 후대에 명마를 잘 고르는 사람을 백락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천리마여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평생을 잡일에 시달리며 죽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천리마가 귀한 것이 아니라 백락이 더 귀하다고 할 수 있겠다.    

 테슬라 회장인 일론 머스크의 기행은 유명한 가십거리다. 정말 멀쩡하게 생겨서 가끔 뚱딴지같은 언행을 한다. 최근에 그가 자신이 ‘아스퍼거’임을 고백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 중에서 아스퍼거로 추측이 되는 이들이 꽤 많다.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에디슨’이다.

어렸을 적에 위인전으로 만난 에디슨은 그냥 천재여서 닭을 품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어 에디슨을 바라보니, 에디슨 보다 그의 어머니가 보인다.

 다들 알다시피, 에디슨은 너무나 독특하고 엉뚱해서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거의 쫓겨나다시피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에디슨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냥 남들이 보는 시선으로 자기 아들을 대하였다면 오늘날의 에디슨이 있었을까? 

에디슨 엄마가 만약 그를 포기했다면, 오~~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말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본 것처럼, 에디슨 엄마는 아들의 비범함을 알았기에, 학교에서 아들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말을 해도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한가지 배운 것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심한 문제아라도 찬찬히 그 아이를 들여다보면 남과 다른 재능이 분명히 있다. 에디슨 엄마처럼 자식의 재능을 바로 알아보고 키워주는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분명 복일 것이다. 바로 내 부모가 ‘백락’이라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교직에 있으면서 가장 슬펐던 일도 그런 경우였다. 아이는 재능이 많은데 가정형편이 너무 불우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사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친정엄마는 모른다. 엄마에게 제대로 된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한 기억이 있어서 알리고 싶지 않다. 나를 키워준 것은 정말 감사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엄마는 나의 백락은 아니였다.

 어찌 보면 내가 천리마인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자식이, 제자가, 지인이 천리마인 것을 알아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驥服鹽車(기복염거)라는 말이 있다. 천리마가 장수를 태우지 못하고, 소금 수레를 끈다는 뜻으로, 유능한 사람이 천한 일에 종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조실부모해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어린 두 동생과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6·25 때 미군 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는 아버지의 영특함을 알아본 미군 장병이 입양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너 없이는 못산다고 하셔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 후 교사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서울 사범을 시험을 치려고 했지만, 학비가 부족해서 처음으로 친척 집에 가서(아버지 말로는 이모부가 매우 잘 살았다고 함)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을 당해서 그 길로 학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삶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터라,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지 못하셨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닥치는 대로 역사책을 보고(아버지의 꿈은 역사교사였다) 나에게 끊임없이 세계사를 설명하셨다. (물론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못 듣는 척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국한문혼용으로 자신이 공부한 역사 내용을 정리한 노트가 나왔다. 그 누구보다 앎에 대한 욕구가 많아 항상 신문을 꼼꼼하게 보고, 청계천 중고서점을 가서 역사책을 사다 보신 내 아버지……. 평생을 자식들 먹여 살린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젊어서는 공장, 나이 들어서는 공장을 지키는 경비로 그렇게 살다가셨다. 아버지가 만약 백락을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부디 바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소금 수레를 끌지 않고 영웅들을 태우는 천리마 본연의 일을 하고 있기를, 아니라면 앞으로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당신 주변에 천리마가 있다면 백락이 되어 꼭 알아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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