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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적성해 Oct 04. 2021

마음에도 보약이 필요해요

그들과 나 사이의 건강한 경게

淸能有容(청능유용)하고 仁能善斷(인능선단)하며

청렴하면서도 포용력이 있고, 어질면서도 훌륭한 결단력이 있으며    


明不傷察(명불상찰)하고 直不過矯(직불과교)면

총명하면서도 지나치게 살피지 않고 정직하면서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다면,     


是謂蜜餞不甛(시위밀전불첨)이요 海味不醎(해미불함)이니

이는 이른바 꿀에 재운 음식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음이니  

   

纔是懿德(재시의덕)이라。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덕이 되리라.      

-채근담-


 날씨가 쌀쌀해지면 해산물 중 대하나 꽃게, 그리고 꼬막이 제철이다. 특히 그중에 꼬막은 내가 사랑하는 해산물이다. 꼬막을 사다가 해감하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하나하나 손질하는 과정은 번거롭다. 하지만 꼬막 비빔밥을 먹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꼬막이나 대하, 생선회를 먹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온통 소금 덩어리인 바다에 살면서 어찌 이렇게 짠맛 하나 나지 않을까?’

궁금해서 고1 딸아이한테 물어보았다. 공통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 세포막의 ‘선택적 투과성’을 말해주었다. 세포막을 통해 특정 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하거나 투과하지 않음으로써 신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다에 사는 해산물보다 어쩌면 더 짜고 자극적인 세상이다. 혼자 살수도, 그렇다고 내 속을 다 버리고 남의 비위만 맞출 수도 없는 그런 세상이다. 어찌 살아야 할까? 해산물에게 답을 찾아보자. 해산물이 짜지 않은 이유는 필요한 만큼의 염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내보내는 세포막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는 세포막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자아의 ‘바운더리’라고 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들의 생각 감정 욕구 가치관 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바운더리를 통하여 받아들일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걸러낸다고 한다. 이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나이 드신 분 중에서 ‘꼰대’가 아닌, 덕이 있으신 분들을 잘 살펴보길 바란다. 그분들은 살아오면서 생긴 자신만의 건강한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또한, 생각의 융통성이 있어서 무조건 자신만의 주장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보고 타당하면 받아들이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타인과 의견이 다를 때 무조건 그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너는 나랑 생각이 다르구나’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넓은 마음이 어찌보면 공자가 강조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통한다. 남과 조화롭게 잘 지내나, 나만의 중심과 원칙으로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요 며칠, 간만에 인간관계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해서  바운더리가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갱년기여서 그런지 유달리 미워 보이는 사람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너는 그렇구나’라고 넘기는데, 미운 모습이 확대경처럼 보여서 힘들었다. 아마도 나의 바운더리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몸이 약해지니 정신적인 부분도 같이 해이해지는 것 같다. 집에 와서 채근담을 다시 읽어보았다. ‘꿀에 재운 음식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으려면’ 결국에는 내 속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험하고 삭막한 이 세상에서 그나마 나쁜 것은 내보내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제대로 작동을 해야 한다.

 환절기에는 사람들이 몸을 보신하려고 보약을 챙겨 먹는다. 우리 마음도 보약이 필요하다. 아프거나 힘든 부분이 있다면 ‘격려’와 ‘지지’라는 약을 꼭 챙겨 먹기 바란다. 짠물을 많이 먹어서 힘들어 하면, 괜찮다고 토닥토닥 해주고, 잘 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짠물을 뱉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몇 번이나 생겨도 언제든지 너를 지지해 준다고 꼭 약속해주자.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남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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