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 데뷔, 근데 이제 공동육아를 곁들인
감성적인 일상 에세이를 쓰려고 개설한 이 브런치의 주제가 중구난방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것이 어찌 계획대로만 되겠는가. 하루는 힘들고 슬펐다가도 하루는 사소한 일로 깔깔대고 또 하루는 이렇게 식물 얘기도 하는 것이 내 인생인 걸 어찌하리.
각설하고, 지난 추석에 별안간 충동적으로 ‘고수 씨앗’을 샀었다. 그리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약 한 달가량이 지난 지금, 너무 잘 자라고 있어서 이 행복을 나누기 위해 ‘고수 성장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1. ‘고수 씨앗‘을 사다
이번 추석 때 본가(전북)에 내려갔다. 전주에 있는 ‘카페 에테르’라는 곳에 갔는데, 카페와 식물 농장이 같이 있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식물 농장으로 넘어가서 다양한 식물들을 구경했다. 동생은 애플민트 화분을 하나 사서 키운다고 해서 같이 찾아봐준다는 게 난데없이 씨앗 코너에서 시선을 빼앗겼다.
사실 식물을 정상적으로 잘 키워본 적이 없다. 약 4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으로 이사 오고 나서, 이름도 기억 안나는 선인장 같은 걸 하나 키웠는데 너무나 무관심하게 대한 나머지 죽이고 말았다. 그 이후 오랫동안 식물은 미안한 마음에 키울 생각조차 안 했는데…
이번엔 공부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키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늘 충동적으로 저지른 후에 행동을 합리화하는 게 내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고수를 사고자 하는 마음은 이미 굳혀진 지 오래였다. 다만 합리화할 이유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씨앗 중 고수를 고른 이유는 그중 가장 키우기 쉬워 보여서였다. 온도나 습도를 까다롭게 맞춰주어야 하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고수는 별다른 조건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실장님이 고수를 좋아하신다는 게 생각났다. 그렇게 되면 고수 키우기가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뿐 아니라, 나름의 실용성도 만족할 수 있는 생산적 취미 활동이 될 것이었다. 만일 고수가 잘 자라게 되면 실장님께 따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당장이라도 심고 싶다는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2. 과장님 없었으면 어쩔 뻔
이번에는 정말 잘 키우기 위해서, 나는 고수를 집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집에만 들어가면 아주 사소한 것도 하기 싫어지는 게으름뱅이인 내가 집에서 매일같이 물 주고 갈아주는 수고를 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사무실에라도 놔두면 하루 9시간이나 붙어 있으니, 눈에 밟혀서라도 뭐든 하지 않겠는가. 또 내가 며칠 고수의 안위를 챙기지 못하면, 우리 팀원들이라도 신경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내심 있었다. (대놓고 농담 반 진심 반으로 공동 육아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여하튼 사무실에서 고수를 키운다고 하자, 나름대로 식집사 경력이 있는 몇몇 분들이 팁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정말 알못인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서 씨를 먼저 불려야 한다는 말만 듣고, 아래 사진처럼 냅다 물에 씨앗을 죄다 담가버렸었다.
그러다 과장님(식집사 1호)께서 발견하고 위와 같이 수정해 주신 것이었다. 물에 적신 티슈를 넉넉히 깔고 그 위에 씨앗을 놓은 다음에 또 물에 적신 티슈로 덮는 것이다.
과장님 덕에 제대로 불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상태로도 거진 2주는 있어야 발아가 된다고 해서 좀 답답하긴 했다. 내 열정의 씨앗이 꺼지기 전에 화분에 심아야 하는데 2주는 너무 긴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음 글에서 이어나가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싹이 트고, 곧바로 흙에 옮겨 심을 수 있게 됐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