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익숙한 음과 생소한 음의 조화

훈련소의 날시(詩): 4일 차

by 정오

훈련소의 날시(詩): 4일 차


6. 익숙한 음과 생소한 음의 조화

오늘은 입소식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조교들과 간부들은 아침부터 바빴다. 입소식에는 교육대장, 연대장이 참석하는데 이들의 계급은 까마득히 높다. 자대에 간 후 하늘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하던 대대장의 계급이 중령이었는데, 교육대장은 그 바로 아래인 소령, 연대장은 그보다 한 계급 위인 대령이었다. 당시 훈련병이었던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여타 간부들에게는 오차 하나 없이 준비해야 할 큰 행사였다. 훈련병들이 할 일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충성!”을 외치는 것, 부동자세로 오와 열을 맞추어 삼십 분 정도 서 있는 것이 다였다. 수백 명의 훈련병이 연병장에 모여 입소식을 대기하는 동안 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입사한 친구가 신입사원 교육 연수를 다녀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몇 주에 걸친 기간 동안 연수에 참여하다 보면 애사심과 회사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다고 했다. 연수가 끝날 때쯤이면 혈관에는 삼성의 파란 피가 흐르게 된다는 실없는 농담도 곁들인 이야기였다. 나는 한 시간이면 마무리될 이 입소식과 5주가 받게 될 마냥 두렵기만 한 훈련이 나의 혈관에 국방색 피를 흐르게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며 자리에 서 있었다.

입소식 행사에는 총기 수여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총기 수여식은 훈련소 기간 동안 사용할 총기를 받고 엄숙한 선서를 하는 행사이다. 대표로 사열대에 서는 훈련병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미리 총을 받아 들고 있었다. 군 생활 내내 듣게 될 “이것은 국민의 혈세로 보급된 국가의 재산이고, 네 몸같이 생각하고 아껴야 할 총기이다.”라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내 몸과 같이 생각하라는 것은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내 몸처럼 항상 휴대하라는 말이다. 밥을 먹을 때는 물론이고 화장실 갈 때, 훈련 기간에는 잠을 잘 때에도 서늘하고 단단한 쇳덩이를 껴안고 있어야 한다. 더 생각하자면 내 몸인 듯 소중하게 다루라는 비유이다. 사실 되돌아보면 내 몸을 그렇게 소중히 다뤄온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떤 비유라고 이 상황에 곧이 들리겠는가. 총의 무게는 무거운 짐, 책임, 의무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군대 가면 철든다는 말을 총을 들고 다니는 것에 빗대어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마냥 농담이라고 하기엔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총기에는 고유번호가 하나씩 있어서 반드시 외우고 다녀야 했다. 누군가의 몸이었을 총기를 받아 들고 혼나기 전에 빨리 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섯 자리 숫자를 중얼거렸다. 무게도 좀 나가고 생긴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이게 살상력을 지녔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다른 훈련병들은 게임을 많이 해서인지 무기류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총을 받고는 한 번씩 사격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자기가 아는 총기의 정보를 신나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불현듯 나타난 내 어깨에 자리한 새로운 육체의 무게를 느끼며 이 모든 과정에 사뭇 진지하게 임하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소식은 대략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으나 윗분들 보시기에 흡족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소대장에게 몇 분간 잔소리를 듣고 연병장에 남아 제식 훈련을 받아야 했다. 제식 훈련이란 군인에게 절도와 규율을 익히고 통제에 신속하게 따를 수 있도록 아주 세세하게 짜인 동작 훈련이다. 차렷, 열중쉬어, 뒤로 돌아, 우향 우 등 기본적인 움직임에 대한 훈련이다. 뒤로 돌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 등이 얼마나 힘든 거라고 한참을 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제식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신속하게,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뒤로 돌 때는 오른쪽 발을 뒤로 뻗어 바닥을 발 끝으로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빙그르르 돌아야 한다. 돌았을 때, 마지막 자세에서 양쪽 발이 앞뒤로 튀어나온 것 없이 가지런해야 성공이다. 당장 이것을 성공시키기도 처음에는 꽤나 어려운데, 구령에 맞는 타이밍까지 모두가 한 번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에) 맞추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사실 훈련소에서 하는 대부분의 훈육이 그렇듯 이것은 우리가 유달리 못해서 받는 기합이라기보다 정해진 훈련 순서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긴박감을 더하기 위해 설정한 상황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눈치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구령을 듣는 두 귀에 발 끝에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군이란 이런 면에서 모두에게 평등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막사로 복귀하며 걷는 것 까지가 제식 교육의 마무리였다. 소대장으로부터 오합지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대한 지 4일 차, 이제 막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집단이 오합지졸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친밀감도 소속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사급자들의 말에 따르는 것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래도 모두들 온순하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듯 움직였다. 다들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입소식을 마치고 오니 내가 사지에 제 발로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무를 수도 없다. 몇달 전부터 무를 수 없는 일이었지만 거창한 행사를 치르고 나니 실감이 났다. 통제 가능한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 혼돈의 구렁텅이에 발걸음을 옮겨 들어온 것이다. 배워야 하는 것은 또 어찌나 많은지! 예습하고 올 수 있었다면 모범 훈련병이 될 자신이 있는데, 그냥 맨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곳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밝은 조명에 찡그린 채 울며 멋모르고 시작해야 했던 나의 탄생처럼 낯선 곳에 홀몸으로 던져진 것이었다.

당시 나는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읽은 부분은 저자가 ‘혼돈’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펼치는 부분이었다. 혼돈의 상태를 우리 대부분은 부정적인 상태로 인식한다. 실제로 패닉에 빠져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혼돈의 상태를 즐길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것은 혼돈이 줄 수 있는 성장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변이 정돈되고 내가 예상한 흐름대로 움직이는 것이 질서라면,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혼돈이다. 이렇게 둘로 나누어보면 질서가 매우 매력적으로 보지만, 질서에는 우리가 낮은 수준에서 주어지는 안정감에 만족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혼돈은 그런 낮은 수준의 상태를 무너뜨리고 우리가 다시 개인의 세상을 재창조하고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져 뭐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 자체가 혼돈이었고 나는 그 상황이 주는 감정적 혼란을 정통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책에 더욱 집중했다. ‘익숙한 음과 생소한 음의 조화가 음악을 가치 있게 하듯’ 작가의 주장을 함축해놓은 이 문장을 나는 일기장에 옮겨 적었다.

혼돈과 질서에 대해 생각하자니 과거 학교에서 두 개의 상반된 역할을 하는 뼈세포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났다. 두 세포의 이름은 조골세포와 파골세포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골세포는 뼈세포를 만들고, 파골세포는 뼈세포를 부순다. 이 둘은 뼈 안에서 24시간 내내 활동하고 있어 뼈세포들은 꾸준히 파괴되고 생겨난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혼란스러운 작업은 뼈 내부 세포들의 배치와 정렬을 복잡하게 만들어 뼈가 다양한 방면에서 오는 충격에 강하도록 만든다. 멋진 말로는 골 재형성이라고 부른다. 빠르게 꽉 채우고 단단해지고 싶은 것이 우리의 어린 욕구겠지만, 그러다간 한 개의 결 만으로 이루어진 뼈가 되어 반대쪽으로 힘이 들어오면 뚝 부러지고 말 것이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시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혼돈의 상태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묘수를 고민하는 날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저 그 시기를 버텨야 할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 무기력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모든 상황에 대한 새로운 질서와 답은 언젠가 나도 모르게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생활하면 될 것이었다. 낯선 만남과 낯선 상황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앞서 간 이들의 조언과 충고를 타고 내 안에 흘러들어 서서히 자라났다. 나의 음악에 생소한 음이 끼어들고 내가 만든 음악의 질서를 망친다 하더라도, 나는 생소한 음이 나의 음악에 조화로워질 때까지 그 음을 품고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날 옮겨 적었던 글처럼, 익숙한 음과 생소한 음의 조화가 음악을 가치 있게 한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