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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Jul 15. 2022

기이한 꿈은 하루를 망치지만

친구야 지독한 친구야
내 꿈의 그림자를 먹고사는 친구야
나는 네가 죽었으면 한단다
나의 품 속에서 눈물 속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야

네가 불러줄 때 가장 아름다운 나의 이름
한 글자씩 커다란 입모양으로 불러줄 때
가지런한 치아 거대하고 희고 단단한
나는 가져본 적 없는 뭐든 부술 것 같은


너는 입을 벌려 빗방울을 기다리는 갈증
바닥에 고인 물을 허겁지겁 삼키는 갈증
오랜 가뭄에 발자국은 모두 부서지고
친구야 너는 깊이도 숨었구나
죽은 듯이 고요하구나

네온사인 아래의 문전성시는 욕하지만
불 꺼진 식당의 네온사인은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사실 네가 며칠을 굶어도
지독하게 살아 있었으면 한단다
어둠만큼 깊은 허기가 찾아올 때도

나는 가끔 네가 웃는 모습을 본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습한 동굴 속에 숨은
선명하고 섬뜩한 이를 가진 나의 친구
정말 죽이고 싶다가도 가끔 따라 웃게 되지

친구란 그런 것이 아니겠니 우리는
끝까지 서로의 지독함을 감상하며 웃겠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기만 해도
드러나고야 마는 기이한 탐욕들과 함께
즐거운 일이라도 생길 것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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