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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Jul 21. 2023

일단 지나가겠습니다

버스로 2시간, 지하철로 30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산에 맞닿은 밭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이곳으로 닭장을 옮겼다. 삽 하나로 배수로를 만들고 계사 바닥을 5M 아래까지 파서 철망을 깔았다. 그렇게 계사 만들기가 마무리되던 중 아랫집이 공사를 시작했다. 밭으로 가는 길을 막고 포클레인으로 산을 모두 갈아내고 있었다. 이 집의 횡포는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가문 묘지와 밭으로 사용되던 산이었는데 3년 전쯤 새로운 업자가 들어와 산을 마을로 조성해서 되파는 땅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팔라고 했지만, 노후의 전원생활을 꾸리려던 부모님은 거절했다. 가족이 지내던 땅에 대한 추억이 돈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밭 바로 아래 갑자기 집이 생겼다. 알고 보니 업자의 아들네였다. 본래 비탈 아래까지 차가 들어갔었는데, 어느 날 도로를 포장하더니 차가 나타나면 집에서 뛰쳐나와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자동차는 잠시 길이 막혀서 그런가, 하고 이해했지만 자전거조차 지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수많은 국토와 아랫집들의 땅을 밟고 올라온 그를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다, 포클레인 앞으로 갔다. 아무래도 이 땅을 지나가야 한다고 사정을 말했더니 본인들 땅을 마음대로 공사하겠다는데 어쩌라는 거냐는 식으로 굴었다. 하지만 현행법상 유일한 길을 막고 공사를 하려면 동의를 얻거나 지나갈 길이 좁게라도 있어야 했다. 청에 바로 전화를 넣자 업자가 혀를 차며 포클레인에게 길을 만들어주라고 했다. 흙으로 무너지는 비탈을 겨우 올라서 계사 만들기를 지속해야 했다. 공사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앞으로도 길이 막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알 수 없다고만 말했다. "지나갈 수는 있게 해 드릴게요, 그런데 여러 명의로 되어있어서 동의를 다 구하셔야 할 텐데?"라고도, 반쯤 도발하듯 말하기에 일단 돌아섰다.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 우리의 계사도 완성했다. 문제는 그들이 산을 깎아내서 만든 길 탓에 비탈이 심해졌고, 그 토사를 방지하기 위해 옆으로 높은 장벽을 세웠다. 그러니까 밭으로 가던 본래 입구는 건물로 막았고, 옆으로 올라갈 수 있는 비탈은 옹벽으로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이러다 하늘도 자기들 것이라고 펜스를 치겠구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사다리를 옹벽에 댔다. 그곳으로 며칠 정도 오르내렸을까, 아랫집에서 이번엔 부인이 헐레벌떡 나왔다. 집 앞에 사람만 오가면 뛰어나오는 그들을 보며 한 동물이 생각났다. 부창부수라더니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와 이 길로 가지 말란다. 그런데 그 담 너머의 땅은 또 다른 명의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그들의 땅이 아니었다. 우리 밭 외에도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다른 분들의 땅도 약간의 통로도 내지 않고 막아버리곤, 그곳으로 지나지 말라고 막아섰다. 나는 그 사람을 가만히 내려봤다. 

공사 때는 어떻게 지나냐고 하니까 이 방벽 너머 비탈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젠 올라가지 말라고 한다. 그럼 길이 없다고 하니, 부인이 손을 들어 건물 너머를 가리켰다. 컨테이너 건물 바로 뒤쪽에는 허벅지 높이의 흰 담이 있었는데, 쭉 따라 걸으면 왼쪽 끝에 작은 아이 한 명이 겨우 지날 정도의 틈이 있었다. 문제는 담의 끝이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절벽이라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심지어 공사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발이 닿으면 주욱하고 흙이 미끄러져 심장이 덜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장벽에 사다리를 대고 오르려는데 그곳에 흰 종이가 붙어있었다. "난관을 밟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왜냐면 나는 항상 펜을 들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고, 눈앞에는 틀린 맞춤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난관 없이 좋은 길만 걸으라는 훈담인가. 평소 그들이 무자비하게 산을 밀어내서 새가 사라진 사실이나, 땅을 막아서고 산의 소유를 주장하는 행동이나, 저 작은 틈을 길이라고 내주곤 자비로운 듯 굴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 위협적인 경고문과 그에 맞지 않은 허술한 맞춤법이 묘하게 들어맞았다. 

공사장에 놓여있던 팻말을 떠올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복지시설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애인 복지시설, 노인 복지시설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돈이 부족하고 허가가 나지 않아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했다. 낭떠러지 길을 걷다 무릎이 약한 어머니가 미끌릴 뻔한 사고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좋은 사업을 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사고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장애인을 만들어야 장애인 복지 사업을 하겠지, 라고도 생각했다. 기본적인 배려조차 않고 우리 땅을 팔게 만들려고 벌이는 온갖 행동이 몰상식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인격과 돈벌이가 함께 가긴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는 계기였다.


사실 이 공사 뒤에는 또 다른 일이 엮여 있었다. 밭에 먼저 길을 내고 전기나 여러 시설이 들어서면 맹지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고, 저쪽의 행동이 좀더 빨랐다. 그나마 계사라도 사람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서 가설건물로 인정받고 도로명주소까지 얻었다. 그렇게 되면 곤란한 건 우리 밭을 어떻게든 구매해서 새로운 마을조성이든 복지시설 건축이든 할 수 있는 업자들이었다. 땅값을 싸게 구매해야 이후 이득이 크니 어떻게든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고 묘지도 퍼내서 땅값을 떨어뜨려 싸게 구매할 심산인데, 우리가 이곳에 들어서면 그 계획이 어긋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우리는 계사에 달구들의 보온을 위해 전기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전기 인입 신청을 해야 하는데, 아랫집 업자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엄마가 내려가서 잠시 차라도 마시면서 대화하자고 했더니, 문전박대하곤 두 달을 기다리라고 했다. 일단 상대 집 앞에 전주를 꽂아야 하는 거니 우리도 물러섰다. 문제는 그들이 대화를 하고 일주일 뒤에 장벽과 담을 세우는 공사를 시작했다는 데 있다. 이익이 되는 곳에는 투자가 많이 된다. 내가 이 땅에 지닌 애정이나 자연에 대한 숭고함이 미래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해도 이토록 돈이 들어오진 않는다. 나는 포클레인 앞에서 부조리함을 느꼈다. 돈이 되는 곳에 돈이 들어간다. 그 당연한 투자가 산을 엎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공사가 끝난 자리에는 높은 전주가 서있었다. 

공사는 두 달 이상 걸렸다. 그들은 우리가 전기를 들여야 한다고 했을 때 두 달만 기다리라고 했다. 인내심으로 다섯 달이 넘도록 잠자코 있었다. 다시 전기인입 동의를 구하러 갔다. 실상 전주는 우리 밭에 설치하는 거였고 그 집의 전주에서 전선을 끌어와야 했지만, 도로를 사용해야 해서 협조를 구하는 거지, 동의는 필요 없는 공사였다. 다만 그들이 한전에 민원을 넣으면 잠시 업무를 중단해야 해서 하루면 끝날 일을 며칠간 끌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길 위험이 존재했다. 억지로 다시 합의를 보러 갔다. 겨울이면 영하 10도 아래까지 떨어져서 닭들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역시 동물의 목숨은 고려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그럼 자신들의 집 앞에 차가 오가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니 뒤쪽으로 돌아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무조건 안된다고만 했다. 두 달을 기다리라더니 이번엔 언제 시작될지도 끝날지도 모를 또 다른 공사를 2년 정도 기다려보라고 했다. 본인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전기는 본인들이 아닌 한전에서 발전시킨 건데 꼭 자신들 전유물처럼 굴고 있었다. 게다가 본인들의 집에 끌어당긴 전선도 모두 원주민들의 전주에서 끌어온 거였다. 뻔뻔한 낯을 보니 할 말이 없어졌다. 역시 하늘도 자기들 거라고 우길 인성이었다. 만약 여기서 또 물러서면 이번엔 어떤 장벽을 세울까. 꿈이 진시황이라도 되는지 만리장성 건축에 열을 올린다. 복지관이 아니라 무덤을 만들려는 걸까?


요즘 분위기를 살폈을 때 복지시설이 아니라 마을조성으로 노선을 바꾸려는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높은 산 중턱인 데다 법으로 허가될 만큼의 도로 폭을 만들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3년 전쯤부터 그래왔듯 아래의 신축 농막이나 집처럼 마을을 만들려는 듯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한때 화성개발에 열을 올리니 그 비용으로 있는 지구나 잘 가꾸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처럼 산 아래에는 빈 집이 널려있었다. 원주민들은 여러 사정으로 시골을 떠나고 남은 집만 수십 채였다. 수도마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오래된 전통 가옥도 있었다. 정말 효율과 미래 등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그 집들을 매매해서 재조성해야 했다. 복지시설이라도 사람을 게토처럼 가두려는 심산이 아닌 이상 마을 가까운 곳에 만들어야 오가기 쉬웠다. 무엇보다 평지니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쉽게 다닐 수 있다. 여기는 건장한 몸으로도 오르내리기 어려워서 차가 있어야 다닐 수 있었다. 정말 그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 정도는 염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복지시설을 건축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그들이 좋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몇 명의 인간이 살기 위한 사업을 위해 수백 마리의 새의 둥지와 동물들의 길목 마저 앗았음에도. 마치 특정 직업을 가지면 그 사람의 행실과 상관없이 올바른 사람일 거라고 쉽게 믿어버리는 것처럼. 


며칠 전 <마르셀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봤다. 마르셀의 가족은 휴가철에 지내는 외딴 별장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려면 무거운 짐을 온 가족이 짊어지고 한 시간 넘게 걸어가야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문 관리자가 마르셀의 아버지에게 그분의 제자였다며 말을 걸어왔다. 어렸을 때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하겠다며 별장까지 데려다 드리겠다고 제안했는데, 너무 멀어서 미안하다고 아버지가 거절했다. 그러자 관리자가 씩 웃으며 열쇠를 꺼냈다. 그 열쇠는 수로를 따라 이어진 세 개의 관문을 여는 데 사용되었다. 세 귀족의 땅에 세워진 문이지만, 같은 수로를 사용해서 관리상의 문제로 그 제자가 지니고 있었다. 제자의 도움으로 그 세 개의 문을 가로질러 20분도 채 되지 않아 별장에 도착했다. 제자는 임신한 마르셀의 어머니와 어린아이들을 보며 그저 지나갈 뿐이라면 이 열쇠라도 쓰라고 쥐여준다. 아버지는 여러 번 거절하지만 수로 공사 문제를 발견하고 메모하던 걸 알고 있다며, 그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이고 수로 관리에도 도움이 되니 그런 용도로 쓰라고 제자가 말한다. 이후 고민을 거듭하던 아버지가 결국 열쇠를 받아들인다. 물론 수로에 관해서도 계속 기록했다. 그래도 맘이 편하지 않아 몰래 지나가는데, 첫 관문의 귀족과 친해진다. 몸이 불편한 여성과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도움을 주기도 했다. 두 번째 관문에서는 그곳을 관리하던 농부가 주인 몰래 지나가도록 편의를 봐줬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의 관리인은 함부로 지나다니지 말라며 물건을 빼앗고 가족을 내쫓은 뒤 문을 사슬로 묶어버린다. 결국 가족들은 다시 돌아가다 어머니가 쓰러진다. 그걸 보고도 관리인은 썩 꺼지라고 몰아낸다. 영화에서는 다행히 다시 제자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관문을 지날 수 있게 된다. 수문관리법상 수문을 가로막는 행위는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을 막았던 관리인이 늘 편하게 오가던 문을 더 이상 못 가도록 제한한다. 


법적 소유의 문제와 인정상의 문제는 항상 애매하게 대치된다. 법도 완전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주민과의 관계나 역지사지상으로 길을 내어준다. 법적으로도 완전히 길을 막아서는 건 금지되어 있다. 이 영화는 일종의 동화지만, 거기에는 소유와 공유에 대한 개념이 들어있다. 결국 중요한 건 법보다 법을 시행하는 인간에게 있다는 말도 된다. 흔히 말하듯 법도 인간이 만드는 거고 사회의 통념과 시대적 가치관에 따라 변화한다. 결국 법의 기본은 인간이라는 뜻이다. 막 말하자면 사람 나고 법이 생겼지, 법이 생기고 사람이 생긴 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법적으로만 따지다 보면 오히려 더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고려가 상실되기도 한다. 정치에 대한 오랜 철학적 논의에서도 이뤄졌던 이야기다. 아직 이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고 진행 중이지만 뜻하지 않게 많은 배움을 얻고 있다. 항상 느끼지만 저 사람을 본받아야지 만큼, 저 사람처럼은 되지 않아야지 라는 마음은 많은 깨우침을 준다. 결국 나는 어떤 가치관과 행동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 인간의 격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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