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먹는 깻잎은 들깨의 잎으로 뒷면은 보랏빛에 가깝다. 위협적인 색감과 꺼칠한 촉감은 강한 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자생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허브다. 올해도 밭 한 편에 깻잎이 자랐다. 상추와 배추는 남부의 뙤약볕을 견디기 어렵지만, 깻잎은 거친 땅을 뚫고 올라왔다. 고된 환경을 이겨낸 깻잎의 향은 바람결에 느껴질 만큼 짙다. 대부분의 민트나 향신료는 마르고 더운 땅에서 자랐다. 언젠가 향나무는 도끼질을 할수록 향이 강해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깻잎도 잎줄기를 떼어낼 때마다 싸한 향을 풍겼다. 맨손으로 깻잎을 따다 보면 손톱에 검푸른 물이 들었다. 볕에 검어지고 땅을 솎느라 핏줄이 불거졌다. 손이 짙어질수록 여름 향이 깊게 뱄다. 거칠어진 손에선 알싸한 여름내가 났다.
검은 손톱은 불청결한 요소로 인식되지만, 짙어진 손은 강한 생명력을 나타낸다. 하얗게 정돈된 손은 추구할 가치로 인정받지만 검은 손톱은 정직한 인내의 표상이다. 굳은 흙을 가르고 씨앗을 심는 동안 손은 거칠어진다. 어느 손이나 외면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거칠게 벗겨진 손은 하대의 대상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흔적이다. 나는 괴팍한 취향으로 미끈한 손보다 벗겨진 손에 마음이 끌렸다. 아름다움은 매끈함이 아닌 상처 아래에 있다고 종종 생각했다. 짙고 까칠한 손의 표면은 깻잎과 같다. 짙은 손에선 강한 향이 난다.
성인이 된 이후로 아버지와 눈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자식과 부모 사이지만 여느 친구보다 낯설어서 마주 앉는 일조차 적었다. 아버지는 IMF 사태 이후 30년 가까이 볕 아래서 일을 해왔다. 길 위에서, 전봇대 위에서, 때로는 맨홀 아래서 온몸이 젖도록 일을 했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나간 아버지는 저녁 해를 등지고 돌아왔다. 짧은 머리카락 아래 목은 항상 붉었고, 손이나 팔은 검었다. 말주변이 없는 탓에 가끔 붉어지는 뒷목을 멀리서 흘긋 바라보곤 했다. 하루는 그 붉은빛이 신경 쓰여 탁상에 선크림을 올려뒀더니 땀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며칠 뒤 슬쩍 통을 열어보니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아버지의 목은 갈수록 검어졌다. 검은 목덜미를 보면 여름이 무르익었음을 알았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아버지와는 다양한 일을 겪으며 서먹하게 살아왔다. 아버지의 손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잡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그렇기에 비탈에서 느낀 감촉은 강한 충격으로 남았다. 그날 밭으로 향하는 땅은 유독 바스러지고 무너져서 한 걸음 오르기가 힘들었고, 아버지는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뒤따르다 햇빛에 휘청거렸고, 아버지가 불쑥 손을 잡아끌었다. 묵묵히 밭일을 마치고 해 질 녘에 집으로 왔는데, 손에 닿았던 느낌이 문득 떠올랐다. 기억 속 아버지는 바둑을 즐겼고, 그 손은 바둑돌처럼 반들반들했다. 마치 바둑돌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굳은살이 맺히고 떨어지며 거칠어졌다.
아버지는 종종 제 삶을 아프게 말했지만, 나는 과거보다 지금의 아버지가 가슴에 남았다. 어쩌면 손을 자주 잡던 아주 어린 시절보다 지금 더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다. 물론 아직도 눈을 마주 보기 어렵고, 함께 앉아있으면 일어나기 바쁘지만, 가끔 검게 물든 손이나 깻잎을 보면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전엔 없던 감각이었다. 몇 계절을 뛰어넘어 이제야 닿은 기분도 들었다. 밭의 깻잎을 한 장씩 따면 가방 하나가 가득 찼다. 엄마는 그 깻잎을 받아 들고 양념을 시작했다.
깻잎장아찌는 종종 깻잎김치로도 불린다. 김장했던 배추김치가 바닥을 드러낼 때면 어엿하게 자란 깻잎이 바람에 출렁였다. 성인의 손만큼 자란 거친 잎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중요한 요깃거리가 됐다. 고춧가루, 간장, 깨 등을 섞은 양념을 수확한 잎 위에 바르고, 그 위에 다시 깻잎을 얹었다. 깻잎 한 장마다 손길이 닿았다. 잡생각 없이 깻잎을 하나씩 만지고 나면 반찬통 하나가 가득 찼다. 간장을 바탕으로 붉은 고추와 초록 깻잎이 도드라진 모습을 보면 군침이 돌았다. 당장의 충동을 견디고 뚜껑을 덮으면 겨우내 여름을 맛볼 수 있다.
여름이면 겨울을, 겨울이면 여름을 떠올렸다. 더워질수록 겨울의 서늘함이 간절해졌다. 그럴 때면 냉장고 깊은 곳에 남은 마지막 김치를 꺼냈다. 겨울의 배추김치는 봄이 지나서야 맛이 들고, 여름의 깻잎은 가을이 지나서야 맛이 들었다. 배추와 깻잎은 달리 닮은 점이 없지만, 양념을 할 때 잎마다 양념을 넣어야 한다. 얇은 표면을 가르고 깊은 곳까지 손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양념이 배어들며 숙성됐고, 숙성된 계절에선 진한 맛이 났다. 오늘도 따끈한 밥에 김치 한 장을 올렸다. 깻잎과 배추를 오가며 먹는 동안, 입속에 갓 담은 깻잎의 싸한 향과 발효된 배추김치의 알싸한 식감이 섞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