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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Mar 01. 2022

이상한 공간

영국에서 가장 큰 동물원

영국에서 초등학생 4학년, 고학년이 된 아들이 예전과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요즘 아이는 쿨해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 결과 정작 해야 할 기타 연습은 안 하면서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 같은 모습을 아이는 꿈꾼다. 영화 <패딩턴 2>에서 여전히 기차를 가지고 노는 브라운가의 아들이 쿨해보이려고 그 사실을 대외적으로는 숨기는 모습이 마치 우리 아들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귀여운 것들이 여전히 아이 마음을 파고드는지 아이는 동물 잡지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파자마 삼총사 포스터에서 레고 시티와 스누피 포스터로 바뀌던 아이 방에 이제 동물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쿨하기로 결심한 듯한 모습과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직은 공존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최근 부쩍 자란 것 같은 아들이지만 천진함은 아이의 마음속 제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하다.   


얼마 전 하루 날을 잡아 동물원에 다녀왔다. 아들이 더 쿨해지기 전, 동물을 시시하게 여기기 전에 다녀오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팬더믹 이전에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 코스로 자연스러운 곳이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데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코로나 봉쇄령을 겪으며 집에 갇혀 지내보니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 답답함을 몸소 체험했기에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평생을 지낼 동물들을 보는 내 마음이 이제 더 이상 편치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물에게 더 여유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휩스네이드 동물원(Whipsnade Zoo)에 다녀왔다. 야생동물과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런던 동물학회에서 운영하는 곳이기에 이 동물원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동물보호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동물원 측에서 주장했다. 그 말을 믿으며 동물을 구경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조금 덜어내기로 했다.  

 

1931년에 개장해 영국에서 가장 큰 동물원인 이곳은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베드퍼드셔 주 던스터블에 위치해있다. 여의도 정도의 크기인 600 에이커의 면적은 동물원이라기보다는 시골 들판이나 공원에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광활하게 느껴졌다. 언덕 위에 있어 탁 트인 전원풍경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동물들이 뛸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을 제공다. 펭귄이 있는 곳은 전망이 너무 좋아서 마치 펭귄용 인피니티 풀이 제공된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펭귄뿐만 아니라 기린, 코끼리, 하마, 코뿔소, 사슴, 호랑이 등 몸집이 큰 동물들에게도 일반 동물원에 비해  여유 있는 공간을 제공해서 이곳은 그들만의 5성 호텔처럼 보였다. 세 시간을 걸어 다녔음에도 우리는 동물원의 동물 모두를 다 볼 수 없었다. 동물원 안에서 자가용으로 이동할 수 있게 조성해 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물을 보호한다며 동물들에게 좋지 않을 배기가스를 뿜어낼 차들을 동물원에 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게 조금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들을 둔 가족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가용 이동시 입장권과 별도로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작은 동물원에서는 한 두 마리만 겨우 볼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는 흰코뿔소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도 볼 수 있었다. 코뿔소를 실제로 처음 본 나는 그 몸집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당했다. 흰코뿔소 수컷의 몸무게가 무려 2300KG나 된다는 동물원 유료 안내 책자 속 설명이 납득되었다. 이곳에서 동물들은 자기 구역에서 실내와 외부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코뿔소가 밖으로 나와 폭포수 같은 오줌을 쌌다. 몸이 크니 오줌 양도 엄청난 것 같았다. 그 자리에 금세 웅덩이가 생겼다. 우람한 모습의 코뿔소를 가까이서 본 후,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흰 코뿔소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 들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작년 여름에 태어났다던 아기 코뿔소는 건강히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키가 큰 기린을 위한 기린의 집은 천장이 높았다. 기린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관람대가 있었다. 기린은 유리 담장 너머 관람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데도 그 근처에 가까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가 좋아서인지 어떤 기린은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나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야크 무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캥거루를 닮은 이름이 생소했던 동물은 자유롭게 동물원을 누비고 다녔다. 코끼리는 우리가 운동회 때 박 터트리기를 하는 것처럼 코를 이용해 나름의 먹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폐장을 앞둔 시각, 우리는 무기력한 한 존재를 발견했다. 네팔에서 온 아시아 코뿔소였다. 명랑해 보이는 흰 코뿔소 무리와는 다르게 아시안 코뿔소 두 마리는 서로 떨어져 실내에만 머물러 있었다.

건초더미 같은 먹이를 먹고 나서는 바로 힘없이 드러누웠다. 약간 어두운 실내와 물웅덩이에서 나는 소리는 음침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처럼 동물들의 지상낙원으로 여겨진 이곳이 영화 <옥자>의 어두침침하고 거대한 도살장의 모습으로 오버랩되었다. 코뿔소에게 오늘 일진이 좀 안 좋았던 것뿐인데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동물에게 럭셔리 호텔급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도 이곳의 동물들에게는 여전히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동물들이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동물원 내에서는 변함이 없다. 지쳐 보이던 코뿔소는 고향을 떠나 와 정착한 이곳에서 그저 살아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다정하려고 애써도 동물은 자기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 같다. 낯선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는 신비함이 도사리는 그곳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멈춰 서서 코뿔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딘가 어긋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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