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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Oct 16. 2023

 MBTI가 이럴 줄이야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MBTI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유튜브 화제의 예능프로그램인 <문명특급>에서도 진행자 재재는 게스트가 나오면 MBTI가 뭐냐고 자주 물어본다. 지인 중 한 명은 내게 인간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 MBTI 유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MBTI가 유행처럼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하나의 표식이 되어갔지만, 정작 나는 내 MBTI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딱 한번 검사를 해봤는데 그날 이후로 내가 어떤 유형인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게 뭐 대수라고...   


고민이나 걱정이 있으면 나는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갈증을 해소한다. 그런데 여기서 친하다는 의미는 나를 안 지 1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헝클어진 내 마음이 쉬 풀어질 수 있다. 그들은 모두 한국에 있기에 한국 방문은 내게 일종의 테라피이기도 하다. 올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도 그런 힐링을 기대했지만, 예전같으면 이미 재충전이 되던 내 마음이 이상하게 둥둥 떠다녔다. 이번 방문은 출발 때부터 과거와 다른 상황 (할 일 때문에 마냥 놀고만 올 수는 없던 상황), 서울에서 지내다 생긴 변수들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심리적으로 좀 그랬다. 아끼는 이들과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평소에 안 마시던 커피를 한국에서 너무 자주 마셔서, 카페인에 의한 반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얼마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심리적 안전기지인 한국에 왔는데도 막연한 불안감이 떠도는 게 너무 이상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은 받지만 심리 검사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상황을 겪으니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장자이자 가까운 지인 두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언을 구했다. 다행히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경험한 상담가들을 내게 추천했다. 한 분은 내게 사주 명리학을 보는 역술가를 추천해 주었고, 다른 한 분은 고가의 상담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름난 심리전문가를 추천해 주었다.

아무래도 역술가보다는 심리 상담가가 나을 것 같아서 후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성격 검사를 해야만 했다. 그 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고, 예약을 해서 상담을 받는 다소 특이한 절차를 따른다. 뭔가 번거로워보았으나, 급한 마음에 나는 만천 원을 결제해 그 전문가가 자체 제작한 온라인 성격유형 검사를 했다. 반신반의하고 했는데, 간단한 검사와는 달리 자세한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지에 나온 분석을 보고 나는 이미 내 문제의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평소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통계적으로 분석된 객관적인 데이터는 몰랐던 나를 재발견하게 해 줬다. 아 이래서 내가 그랬던 것이었구나. 분석지에 나온 나란 인간이란 대게 그런 성향을 지니고 행동을 한다는 것에 격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 자체가 고민 해결의 큰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그제야 왜 사람들이 요즘 MBTI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결코 끝나지 않을 인생의 과제 같다. 이와 관련해 괴테 권위자 전영애 교수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녀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를 언급하시며, "70살이 되어도 더 늙어도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한동안 불안정했던 것은 내게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여름이 지난 이제야 깨닫는다. 적어도 내게 머무르던 두려움과 불안함은 하나의 성장통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알게 된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허들을 만나더라,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 있게 넘길 수도 있을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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