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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은 Sep 21. 2021

엄마와 서울 구경

 "엄마, 서울 갈까, 이번 주에?"


 우리 엄마는 내가 처음 서울에 자리 잡은 24살, 처음 방을 잡은 날 청소를 해주시러 하루 오신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또다시 이사를 가고, 직장을 옮기는 동안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무려 5년이 넘게 흘렀다.

 

 "그럼, 엄마 꼭 와."

 왜 한 번도 나를 보러, 서울 구경하러 오지 않느냐고 나는 항상 물었다. 엄마는 '네가 내려오면 되는데, 뭘.' 하고 늘 피하셨다. 아마 서울에 올라오는 데 드는 차비 10만 원, 그리고 여행 경비 등이 부담스러웠으리라. 엄마를 보면 항상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왜, 어째서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는 없는지. 엄마는 그나마 얼마간 있던 돈도 온라인 사기로 홀랑 잃어버렸다. 한 달에 한 번 이자 16퍼센트를 준다는 몽키매직에 빠져 돈을 잃은 건 그렇다 치고. 시즌 1, 2로 잃어버렸으니 정말 환장할 일이다. 엄마는 몽키 매직으로 번(?) 돈으로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1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쓰며, '나 돈 많아. 괜찮아.' 하며 싱글벙글 웃으셨다. 엄마는 누구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사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던 사람이다. 식당 일이라는 게 주말 휴가가 어렵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 토요일, 일요일에도 한 번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는 엄마다. 내 가족여행의 기억은 아빠랑 같이 갔던 등산이나 공원이 전부다. 가끔 아빠 거래처 사람들과 같이 낚시를 갔던 적도 있는데,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가 못내 신경이 쓰여 아빠 친구가 구워주시는 장어를 몰래 휴지 속에 켜켜이 쌓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내가 먹기 싫어서 버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엉엉 우는 나를 안아주며, 아빠 친구가 오히려 그 맘을 알아주셨다. "엄마 갔다 주려고 그랬어, 그랬구나."


 그 장어를 엄마한테 가져다주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내가 어른이 되면, 꼭 엄마에게 장어를 사다 줘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단 것만 기억이 난다.


 "어제는 그냥 안 오려고 했는데, 아빠가 표를 끊어서 선물해줬지 뭐야. 그런데 지하철은 왜 이렇게 복잡하니, 오만 원짜리를 돈 바꿔 지하철 타느라 늦을 뻔했어."

 "엄마 카드로 그냥 찍으면 되는데?"

 "카드 넣는 구멍도 없고, 돈을 내야 사더라." 

 "아니, 그거 말고. 그냥 카드를 갔다가 대면된다니까?"

 "그러면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기계가 어떻게 알아?"

 "다 신용카드 회사에서 세서 가져가. 돈 받는 신용카드 회사가 얼마나 똑똑한데, 그걸 덜 받아가겠어요?"

 "아이고, 그렇네."


 주말에 올라오시라는 것을, 주말은 너 쉬어야 한다며 굳이 평일에 올라오신 엄마다. 일을 부랴부랴 마치고 조퇴를 하고 온 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서울 지하철이 얼마나 복잡한데 대학로까지 찾아오신 게 용하다.

 

 대학로에서 만난 엄마는 화덕 피자를 파는 예쁜 가게가 낯선지 두리번거린다. 엄마 연배의 회사 부장님, 동료들과는 여러 번 왔던 식당이라 엄마도 꼭 모셔오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자기, 화덕 피자는 화덕이 있는 곳을 예약해야지. 자기가 일전에 예약한 곳은 정말 아니었어."

 부장님이 말하셨을 때 화덕 피자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기도 참 민망하고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의 부장님이 고른 이 집은 정말 맛집이었다. 그날, 꼭 우리 엄마도 모셔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고, 메뉴판이 다 영어네."

 "응, 엄마가 좋아할만한 걸로 내가 시켜볼게."

 가격표를 쓱 훑어보더니 엄마는 해산물 파스타를 시키려는 나를, 그냥 토마토만 들어간 파스타면 족한다고 만류한다.


 "해산물 크림 파스타, 마르게리따 피자 주세요."

 "아니요, 토마토. 그냥 토마토로 주세요."

 주문하시는 서버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신다.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이런다.

 "엄마, 피자가 토마토라서 토마토 토마토 먹으면 셔."

 "좋아, 토마토 몸에도 좋고."

 "엄마, 내가 진짜 맛있는 조합으로 시킨 거야. 오케이?"

 서버분이 웃으시며 말한다.

 "어른들은 해산물보다 베이컨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면 그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30이 다 되어도, 우리 엄마는 좀처럼 이기기가 어렵다.


 "아이고, 봐줘서 고마워."

 "서울에 오면 딸 말을 들어야지, 뭐. 서울에 오니까, 너무 좋다. 딸도 보고."

 "엄마, 딸 돈 잘 벌어.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요."

 "그래도, 그렇게 막 쓰면 못 써."

 "엄마, 쓰고 싶은데 못 쓰면 돈을 벌어서 뭐 해. 싸들고 죽을 수도 없어요."

 "그래, 딸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 파스타가 맛나다며 크림을 싹싹 긁어먹고, 또 피자를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드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까지 오느라 허기가 지셨나 보다. 낙산 공원을 걷고, 내가 자주 갔던 카페에도 간다. 배낭을 메고 서울 여행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 같다.

 

 하늘하늘 꽃 원피스가 휘날린다. 엄마의 흰 원피스는 엄마가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사다 드린 원피스다. 청바지에 카라티만 입는 엄마는 처음에 어색해하시더니, 이제는 어디 좋은 일이 있으면 늘 그 원피스를 꺼내 입으신다. 하늘하늘 거리는 엄마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여 기분이 좋다.


 가끔 일한다는 게 뭘까, 집도 못 사고.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엄마에게 좋은 옷도, 좋은 집도, 좋은 차도 뽑아드리고 싶었다. 뭐든 해줄 수 있는 슈퍼 우먼이 될 줄 알았건만 현실은 내 앞가림도 버거운 직장인이다. 월급 받겠다고 민원인에게 시달릴 때면 다 내려놓고 내려가고 싶을 때도 많았건만. 그래도 서울에 뿌리내리고 사는 자식이 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 엄마를 보니 사뭇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엄마의 자랑이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고 말이다.


 가파른 낙산 공원을 향하는 계단을 보고 아연실색하시는 엄마.


 "내려갈까, 그냥?" 

 "아니야, 엄마. 서울을 다 내려다보게 해주고 싶어."

 "그래, 가보자."


 손잡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정육점에서 일하는 우리 엄마는 무거운 뼈도 척척 옮기는 괴력을 가진 것치고는 아주 마르셨다. 원피스에 잘 어울리는 높은 샌들을 신어서 더 피곤하신 것이리라.


 "어때, 올라와보니 아주 멋지지?"


 낙산 공원 아래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작은 집들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그래, 너무 좋다. 올라오길 잘했어."

 "시원한 커피가 당기지?"

 "아니, 엄마는 따뜻한 거."


 낙산 공원을 바라보며 엄마와 데이트를 하고 있자니, 어린 날 장어를 휴지에 말아 싸던 내가 바라던 미래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따뜻한 커피와 서울 구경을 시켜줄 수 있는 나의 삶도 조금은 성공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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