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_김승섭
사회역학을 아시나요? 저는 이번에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책을 읽으며, 이러한 학자가 우리나라에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책은 다양한 ‘아픔’에 대해 소개하며, 그러한 아픔의 ‘원인의 원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심지어 자신의 차별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몸은 아픔을 온몸으로 견디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말이죠.
책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생각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낙태 금지법에서 소외된 여성들,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의 아픔,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병원에 근무하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무엇보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 기울이고, 그들이 어떻게 아픈지, 왜 아픈지,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 공동체에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고,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저와 제 가족들이 살아가야 할 한국 사회에 또다시 재난이 발생하고, 그 재난의 한가운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사회가 필요하고, 제일 중요합니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책은 우리의 아픔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이 같은 고통이라는 얘기 속에서, 그리고 심장병 발생률을 다룬 연구를 소개하면서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회적 관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는 연구결과를 통해 행복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파될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합니다. 사회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행복감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아픔도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비록 지금은 아플지언정 그 아픔은 분명 길이 될 것입니다.
2019.7.2. 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