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건너온 음식들이 몇 년째 인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밀크티나 흑당을 이용한 음료들, 그리고 타이베이 스린 야시장 명물인 지파이(雞排)는 롯데리아 메뉴가 되기도 했고 타이중(台中)의 홍루인젠(洪瑞珍)으로 대표되는 소위 '대만 샌드위치', 지금은 싹 사라졌지만 대왕카스테라도 비슷했었지요. 전국적이진 않아도 쓰펀(十分)의 닭날개 볶음밥이나 곱창 국수 가게도 생겼고 파인애플 빵 펑리수(鳳梨酥)나 유명 밀크티 브랜드 ‘3點1刻’ 등은 대형마트에도 있더군요.
북경식, 북부식, 서안식 떠우푸나오(豆腐脑)
개인적으로 대만을 여러 번 다니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음식 중에는 떠우화(豆花)가 있습니다. 두부를 베이스로 한 간단한 음식, 간식이지요. 굳이 따지자면.. 대만 음식이라기보다는 중화권 전역에 있는, 중국음식입니다. 아침이나 간식으로 연두부에 국물 혹은 소스와 다양한 토핑을 얹어 먹는 음식의 통칭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북부나 서부에서는 떠우푸나오(豆腐脑)라고 부르는데 짠맛, 매운맛 등이 기본이 되고 아침식사로 주로 먹는답니다. 떠우화는 대만을 포함한 중국 남부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단맛이 메인입니다. 작은 종지에 담긴 연두부에 흑당 등으로 만든 묽은 시럽을 뿌리고 다양한 토핑을 얹어서 먹습니다. 따뜻하게도, 얼음을 갈아 얹어 차게도 먹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토핑은 삶은 땅콩(花生), 팥(紅豆), 녹두(綠豆) 등이고 고구마 경단(芋圓), 타피오카(粉圓), 강낭콩(花豆), 율무(薏仁) 등도 많이 쓰입니다. 냉온과 토핑 조합에 따라 어떤 떠우화 집에는 메뉴가 수십 가지가 되기도 하지요. 거기다 떠우화 사촌 격인 탕위엔(湯圓)과 빙수까지 같이 하는 곳이 많아 메뉴는 더 많아집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스타일의 간식 식당들에서 이 음식들을 고급스럽게 팔고 있는 곳들이 많더군요. 검색 잠깐만 해도 화려한 인테리어의 매장에서 고급스럽게 만든 음식들을 파는 브랜드가 많이 보입니다. 그래도.. 제 습성대로, 저는 시장 깊숙한 곳에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나 도시마다 지역마다 수십 년 한 자리에서 떠우화를 만들어온 노포들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가장 기본인 연두부에 흑당 시럽, 거기에 팥과 땅콩. 가끔은 조금 다양한 토핑들. 연두부 자체가 워낙 부드러운 데다 연한 단맛에 푹 삶아 부드러운 땅콩과 팥이 따뜻하게 입안에 들어오는 기분도 좋고 더운 오후, 걷다가 잠깐씩 떠우화 가게 작은 테이블에서 쉬면서 마시듯 먹는 차가운 떠우화 역시 저한테는 참 마음에 드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도 비슷하게 해 먹어 보기도 했었지요. 가게에서 연두부를 사서 팥빙수용 팥을 얹고 설탕 시럽을 적당히 붓고.. 얼음을 갈아 넣고 먹어보기도 했는데 이게.. 그 '은은하고 부드러운' 맛이 전혀 나지가 않는 겁니다. 제가 만든 음식은 모든 게 오버였지요. 흠. 그래서 대만 음식이 한국에서 인기가 많으니 이 '떠우화'도 곧 들어오겠거니.. 싶었는데 안 생기는군요. 일본에선 이미 인기가 많아서.. 유명한 떠우화 전문 프랜차이즈도 많은데 말이지요. ( 東京豆花工房 http://tokyomamehana.com / 浅草豆花大王 http://www.to-fa.com / I love 豆花 http://i-love-toufa.com )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 전역에 이름난 떠우화 집들이 많습니다. 여러 여행정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곳들도 많아 줄을 서는 곳들도 많지요. 대표적인 건 아마 타이베이 닝샤 야시장의 ‘떠우화좡 豆花莊 Beans Village'이 아닐까 싶은데 저는.. 어쩌다 타이베이를 몇 번 가면서도 이 곳엔 못 가봤습니다. 아니, 그냥 동네 뒷골목이나 시장 안에서 툭툭 만나는 곳들을 더 우선시하다 동선에서 빠졌지요. 요즘은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하니 살짝 뭐 굳이 나까지.하는 마음이 있지만.. 다음엔 가볼 생각입니다. 이런 곳들이 메뉴도 다양하고 주문도 용이해서.. 음식을 이해하기는 좋은 점들이 있지요. ( 豆花莊 https://web.facebook.com/%E8%B1%86%E8%8A%B1%E8%8E%8A-184161434950453?_rdc=1&_rdr )
이 사진은 豆花莊의 주문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토핑 재료들의 이름이 붙은 떠우화 종류들이 십여 개, 2가지나 3가지 토핑을 얹는 세트가 몇 가지 있네요. 겨울 한정으로 따뜻하게 내는 옵션이 있고 연두부가 아닌 빙수(刨氷)와 설화빙(雪花氷)에도 토핑을 선택해서 얹습니다.
제가 다녔던 떠우화 집들 중 몇 곳을 소개할까요. 타이완의 최고 미식도시는 역시 타이난(臺南)입니다. 고도 타이난의 안핑 지구의 유명 떠우화집, 안핑떠우화(安平豆花)입니다. 상호 사용의 사연이 있는지 앞에 동기(同記)라고 붙어있네요. 워낙 유명한 집이라 분점도 많고 가게마다 손님도 많고 포장도 많이들 하더군요. 이 곳에선 녹두를 얹은 떠우화를 주문해 봤습니다. 기본 시럽의 단맛에 연두부의 부드러움과 녹두의 고소함이 은근히 신기한 조합이 됩니다.
타이완 섬 제일 북쪽의 오래된 항구 지룽(基隆)도 다른 도시처럼 야시장이 유명합니다. 특히 맛집 노포들이 많지요. 그중 떠우화로 유명한 ‘삼형제 떠우화’의 대표 메뉴 1번입니다. 기본 연두부에 타로로 만든 일종의 케이크 蜜芋頭, 타피오카(粉圓), 그리고 연꽃씨 절임(氷糖蓮子) 세 가지를 얹은 조합입니다. 솔직히.. 연꽃씨 절임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보통 떠우화 집엔 잘 없는 토핑들이 여럿 있는 집이라 관심이 가긴 했습니다.
타이완 북동쪽의 예쁜 도시 이란(宜蘭)에서 한나절 머문 적이 있습니다. 서너 시간, 그냥 지도도 없이 역에서 가까운 구도심의 이 길 저 길을 구불구불 다녔었지요. 그러다가 한적한 골목 한구석에 그림처럼, 조용히 서있는 떠우화 가게와 마주쳤습니다. 시먼떠우화(西門豆花). 오후 좀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주인도 보이지 않았지만 늘 가던 곳인 것처럼 천천히 들어가 한쪽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역시 그림처럼, 어디선가 주인 할머니가 스윽 나타났고, 저는 이번엔 기본 중의 기본, 땅콩(花生) 떠우화를 부탁했습니다. 외국인인 걸 아시고서도 별 표정도 없이 떠우화를 테이블에 놓고 다시 사라지셨습니다. 덜큰한 시럽과 삶은 땅콩은 안 어울릴 것 같은 데도 연두부와 함께 입에 들어오면 괜히 익숙한 맛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묘한 좋은 기분 비슷한 게 들지요. 떠우화.는 계속, 익숙해집니다.
가오슝에선 빙수집들을 찾아다니느라(대만 빙수집은 따로 포스팅을..) 떠우화를 파는 가게는 노포 동메이(東美) 한 군데를 들렀습니다. 심지어는.. 떠우화 대신에 심플하게 이 집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冷凍芋(토란을 갈아서 굳힌 음식)를 맛보았습니다. 토란은 타이완에서는 다양하게 쓰이는 주재료 중 하나지요. 푸석한 듯하면서도 특유의 맛이 있어 전 괜찮더군요 동메이는 큰길에 접해 있는 오래된 찻집인데 다양한 종류의 메뉴를 합니다. 동네에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타이베이의 번화가 시먼띵 근처에 있는 오래된 성중 시장에서 역시 지나가다 발견한 노점에서 가볍게 한 그릇 합니다. 이번에도, 심플하게 타피오카로. 워낙 오래된 시장이라 여기도 기본 50년 노포. 바로 근처에 유명한 카페 明星咖啡館, Astoria Café에 들렀다가 보게 된 곳입니다.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 총통이 러시아 유학에서 돌아와 러시아 지인들과 신년회를 하던 곳이지요. 이 오래된 카페의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바로 달달한 타피오카 떠우화. 아, 양이 아주 작아서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타이베이 역에서 단수이 강변으로 가는 옛 상가거리에 땅콩 수프로 유명한 顏記杏仁露가 있습니다. 허름한 집인데 늘 줄을 섭니다. 줄을 서서 들어가 앉은 김에 간판 메뉴 따뜻한 땅콩 수프(花生湯)와 일종의 냉아몬드 주스(杏仁露)를. 이 두 가지는 엄밀하게 두부가 들어있지 않은, 떠우화가 아닌 다른 카테고리 음식입니다만. 가오슝 근처 메이농(美農)에 70년 넘은 杏仁露 노포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 이렇게 아름다운 맛일 줄 알았다면 쫙 섭렵해 보고 왔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이 부드러운 계열의 맛들은 사실 이전까지 저한테는 그리 친근하지 않았었는데 타이완의 이 오래된 ‘간식’들은 괜찮은 느낌입니다. 땅콩이나 아몬드를 이런 식으로 먹을 수가 있었군요.
떠우화 가게에서 대부분 같이 하는 메뉴 중에 ‘탕위엔(湯圓)’이라고 부르는 게 있습니다. 원래는 찹쌀가루를 빚어 소를 넣어 삶아서 먹는, 중국 전역에서 먹는 음식입니다. 일본 찹쌀떡과 비슷한데 속에 들어가는 소가 땅콩, 깨, 콩 등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타이완의 간식으로 쓰이는 湯圓은 대부분 소를 넣지 않고 손톱만 한 구슬 모양으로, 색색으로 만드는 식입니다. 떠우화나 빙수 토핑의 한 가지로 쓰이기도 하고 湯圓만 넣어 만들기도 하는데 신년이 될 때 먹는 풍습도 있는 것 같더군요. 타이중 근처 고도 루캉(鹿港) 버스터미널 앞 떠우화 가게 ‘녹정기(鹿鼎記)’의 대표 메뉴는 ‘三色湯圓’. 세 가지 색깔의 작은 원통형으로 생긴 湯圓이 연두부와 얼음 사이에 얹혀 나옵니다. 특별한 맛이 있지는 않고 씹는 맛이랄까 그런 역할을 합니다. 따뜻하게 먹으면.. 글쎄요. 단맛이 도는 조랭이 떡국 같겠지요.
가끔, 이 아주 아주 단순하지만 어쩌면 기-잎은 맛을 내는 음식이 생각납니다. 몇 번 만들어 먹었다고도 말씀드렸지만, 이게 오십 년 노포들이 즐비한 이유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집집마다 맛이 다르고 조금씩 구성도 다릅니다. 따뜻한 정도나 차가운 정도 역시 그렇구요. 홍루이젠 샌드위치처럼 아주 단순한 타이완 스타일 음식들도 인기를 끌고 있으니.. 재리에 밝은 어느 사업자가 일본처럼 떠우화도 들여오지 않을까요? 아니, 이미 들어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