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있어도 별로 외로움을 타는 편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있는 것도 상당히 좋아하지만 그와 별개로 좀... 그렇다.
직장에 다닐 때도평일 동안 학생들에게 시달린(?) 보상으로 주말에는아무도 만나지 않고 푹 쉬는 게 좋았다.뒹굴뒹굴 집에 있으면 씻지도 않고 꾸미지 않아도 됐으니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니까.
휴일을 앞두고 '무엇을 해볼까?' 혼자만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신이 났다. 미리 만화책이나 여러 책을 주문해놓고.맛난 먹거리를 잔뜩 사다 놓고.미드나 일드를 고르고.공연을예매하고.
그러다 가끔 친한 친구들을 만나고종종 본가에 내려갔다 오는정도면 만족스러웠다.쇼핑을 하더라도 대개 혼자서다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충분히 살펴볼 수 있게. 여행을 가도 누구와 일정 맞출 필요 없이 나 편한 대로, 나 가고 싶은 곳으로.
심지어 연애도 홀로 상상 속의 연애가 더 많았는지라...
실은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 지어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꼭 혼자인 걸 떠나서, 운동이든 놀이든 순발력이 부족해서 같이 노는 데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러다 보니 자리에 앉아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는 게 가장 마음 편했던 것 같다.
난 학교가 끝나면 집까지 혼자 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좋았는데, 아이들은 같이 가자며 무리 속에 챙겨주려 했다. 물론 고마운 기억이기도 하다.
혼자 다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중학교 마지막 해, 주위에 늘 있던 친구들이 없게 된 그 해부터이다. 반편성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고마운 친구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었기에 어리석게도 소중함을 몰랐던 탓이다.난 다가오는 사람들과만 그나마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베푼 그 노력과 수고들을..알고 보니'혼자'인 것에 정작나는 서툴렀다.
고1 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 생겨 무리 지어 노는 즐거움을 알고 나니비로소 친구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도 했다. 사회성의 부족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아예 모를 때는 속이나 편했지, 더 이상 혼자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의 충돌속에서 나는갈팡질팡했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도 금방 사귀고 잘만 어울려 노는데 난 왜 그러지 못하냐는 내면의 외침이 따가웠다.어느 순간부터 밖에서는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노래 듣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방어막을 꽂는 심정이었다.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지 않는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고, 사회에 담을 쌓았다.마이너하고 견고한 성을 조용히 세워 올렸다. 성격 그 이상의 정체성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내향형'이란 개념을 접하고서 이게 그저 선호의 차이일 뿐이란 걸 알고큰 위안을 받았다. 친구의 수가 꼭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내향형은 원래 말보다 글이 편하고, 사람들과 있으면 기가 빨리지만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차오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네가 혼자인 건 당연해'라고정당성을 부여받은 느낌도 들었다.그래서더욱 혼자 있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더 당당하게.
그러던 내가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별 후도 아니고,
존재의 고독과 같은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그냥 외로움, 마음의 허전함.
사람에게는 사람이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랄까.
어릴 적 겪은 것처럼 또 누군가 나를 두고 떠날 것만 같은두려움으로 꽁꽁 매어둔 회피 심리를 알고나서부터...갈망이 돌아왔다.
'어쨌든 난 사람이 좋구나. 좋아했구나.'
그리고 알게 되었다. 친구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걸. 불편하더라도 조금 애쓸 필요가 있다는 걸.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 비해 이제 난 비어있음을 느끼고,함께 있는 온기를 갈망한다.
혼자라서외롭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니다. 난 혼자 있는 게 여전히 좋지만, 그저 사람이 좋아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미덕이라거나, 누군가의 시선에 내가 혼자여서는 안되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마음이두렵지 않으니 외롭고,
외로우니 또 두렵지가 않다.
아프더라도 다양한 감정이 숨김없이살아있기에오히려 마음은더 풍족하게 차오른다.
결혼을 해서새로이 가족이 생기고,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으며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은 없게 되었다. 가끔 괴롭기도 하지만 이제는 어쩌다 하루 혼자 집에서 자는 것도 무섭고,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재미없어졌다.
난 언제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이제는 외로움을 반긴다. 빈자리들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연결고리가 좋다.외로움이야말로 따뜻한 시작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