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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Dec 02. 2020

겨울을 사랑할 수 없다면



'딸깍' 

'탁'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원룸에 홀로 열쇠를 열고 들어가 스위치를 켠다. 

나갈 때와 변함없는  안을 둘러보며 오늘도 무사 귀환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가방을 던져놓고 주저앉으 잠들어있던 공기가 기지개를 켜고 나를 맞이한다.


불 꺼진 에 들어서는 헛헛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안락 기가 감돌던 그 집에서 나는 자주 울음을 삼켰다. 자유롭지만 고독한 밤과 불편하고도 시끌벅적한 낮이 복되었다. 그렇고 그런 나날들이었다.


어느 해였는지 정확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중 난히 우울하고 혹독한 겨울이 있다. 직장 그만두고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한다며 그나마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때였 싶다. 공부가 좋았지만 현실적인 비루함 극에 달해있었다.


'그래도 봄이 되면 좋아질 거야! 뭔가 그런 느낌이 들어'

'따뜻 햇빛 아래 예쁜 꽃도 필 거고!'


매사 늘 그렇게 바라 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 속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다. 당장 닿을 수 없는 봄을 기다렸다.


'이것을 사면 복하겠지'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 충전될 거야. 어쩌면 근사한 사람을 만날지도 몰라'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해!'


그렇지만 늘 나아지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원에 붙어도, 심지어 졸업을 해도 루한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만족과 막연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내 마음이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꿈을 좇는 것이 아니라 현실 도피였다.

물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럴싸한 겉모습을 방어하기 위해서... 이틀이 달라지기 위해서...


난 내게 일어난 안 좋은 일은 주위 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는 편이었다. 무능한 사람으로 초라하게 보일까 두려워서다. 위로를 받는 것도 서툴러서 늘 씩씩한 척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내세우고 칭찬하지도 못했다.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좋아지려 애쓰기보다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필요했다. 막연한 긍정으로 둘러대 않고 부족한 내 모습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달라진 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법이다. 언제나 더 큰 변화만을 바랄 뿐..


궁극적으로 달라지는  "받아들임" 속에 있었다.

초라함도, 나약함도, 어리석음도 다 괜찮다고...

나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긍정이고, 행복이었다.




아빠가 그랬어.
마냥 맑은 날이면 세상이 온통 사막이라고.
비도 오고 눈도 오고 그래야 땅에서 풀도 나고, 이런 맛있는 귤도 나지.


드라마 <스타트업> 5화에서 달미 이런 말을 했다. 공한 CEO가 되고 싶은 녀는 막연히 밝은 미래만을 꿈꾸는 게 아니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믿는 사람이었다.

떨어져서 다칠까 봐 무서워 그네를 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도 아프지 않게 그네 밑에 푹신한 모래를 깔아달라고 말하는 당찬 소녀였다.


어쩌면 나는 계속 맑은 날 이어지기를 바라 온 게 아니었을까. 척이는 비와 눈은 아무 가치 없으니 어서 그쳐야만 한다고 믿었지 않았나...



겨울을 사랑할 수 없다면,

봄을 사랑할 수도 없다.

고통을 사랑할 수 없다면, 행복이 와도 알아채지 못한다.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언제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날이 어둡고 춥고 깜깜해도 괜찮다. 나는 그런 날들을 수없이 안전하게 지나왔다. 쓸쓸한 원룸에서의 긴 밤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 밤이 있었기에 가족과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지...


중요한 가치는 지금, 여기있다.

특별하지 않은 고통 속에 있다.

그저 그런 하루를 견디는 특별함 속에 있다.

겨울도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스타트업> 공식 홈페이지



#가벼운글쓰기

#뻔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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