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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Jan 19. 2021

외롭고도, 외롭지 않은

내향형의 세계


나는 혼자 있어도 별로 외로움을 타는 편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있는 것도 상당히 좋아하지만 그와 별개로 좀... 그렇다. 


직장에 다닐 때 평일 동안 학생들에게 시달린(?) 보상으로 말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푹 쉬는 게 좋았다. 굴뒹굴 집에 있으면 씻지도 않고 꾸미지 않아도 됐으니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니까.

휴일을 앞두고 '무엇을 해볼까?' 혼자만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신이 다. 미리 만화책이나 여러 책을 주문해놓고. 맛난 리를 잔뜩 사다 놓고. 미드나 일드고르고. 공연 예매하고.

그러다 가끔 친한 친구들 만나고 종종 본가에 내려갔다 오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쇼핑을 더라도 대개 혼자 다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충분히 살펴볼 수 있게. 여행을 가도 누구와 일정 맞출 필요 없이 나 편한 대로, 나 가고 싶은 곳으로.

심지어 연애도 홀로 상상 속 연애가 더 많았는지라...


실은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 지어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꼭 혼자인 걸 떠나서, 운동이든 놀이든 순발력이 부족해서 같이 노는 데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리에 앉아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는 게 가장 마음 했던 것 같다.

난 학교가 끝나면 집까지 혼자 오며 이런저런 생각하는 게 좋았는데, 아이들은 같이 가자며 무리 속에 챙겨주려 했다. 물론 고마운 기억이기도 하다.


혼자 다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중학교 마지막 해, 주위에 늘 있던 친구들이 없게 된 그 해부터이다. 반편성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고마운 친구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었기에 어리석게도 소중함을 몰랐던 탓이다. 난 다가오는 사람과만 그나마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방법 알지 못했다. 군가 내게 베푼  노력과 수고들을.. 알고 보니 '혼자'인 것에 정작 나는 서툴다.


고1 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 생겨 무리 지어 노는 즐거움을 알고 나니 비로소 친구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도 했다. 사회성 부족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예 모를 때는 속이나 편했지,  이상 혼자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 충돌 속에서 나는 갈팡질팡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도 금방 사귀고 잘만 어울려 노는데 난 왜 그러지 못하냐는 면의 외침이 따가웠다. 어느 순간부터 밖에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노래 듣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방어 꽂는 심정이었다.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지  내가 비정상이라생각했, 사회에 담을 쌓았다. 마이너하고 견고한 성을 조용히 세워 올렸다. 성격 그 이상의 정체성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내향형'이란 개념을 접하고서 이게 그저 선호의 차이일 뿐이란 걸 알고 큰 위안을 받았다. 친구의 수가 꼭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내향형은 원래 말보다 글이 편하고, 사람들과 있으면 기가 빨리지만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차오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네가 혼자인 건 당연해'라고 정당성을 부여받은 느낌도 들었다. 래서 더욱 혼자 있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더 당당하게. 




그러던 내가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별 후도 아니고,

존재의 고독 같은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그냥 외로움, 마음의 허전함. 

사람에게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랄까.


어릴 적 겪은 것처럼 또 누군가 나를 두고 떠날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꽁꽁 매어둔 회피 심리를 알고나서부터... 갈망이 돌아왔다. 

'어쨌든 난 사람이 좋구나. 좋아했구나.'

그리고 알게 되었다. 친구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불편하더라도 조금 애쓸 필요가 있다는 걸.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 비해 이제 비어있음을 느끼고, 함께 있는 온기를 갈망한다. 


혼자라서 롭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니다. 혼자 있는 게 여전히 좋지만, 그저 사람이 좋아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미덕이라거나, 누군가의 시선에 내가 혼자여서는 안되기 때문 아니다. 

그냥 마음이 두렵지 않으니 외롭,

외로우니 두렵지 않다.

프더라도 다양한 감정숨김없이 살아있기에 오히려 마음은 풍족하게 차오른다. 


결혼을 해서 새로이 가족이 생기고,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으며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은 없게 되었다. 가끔 괴롭기도 하지만 이제는 어쩌다 하루 혼자 집에서 자는 것도 무섭고,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미없어졌다. 


언제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로움을 반긴다. 빈자리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연결고리가 좋다. 외로움이야말로 따뜻한 시작이 될 수 있. 



20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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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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