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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Dec 17. 2020

우리 집 책장의 소설을 딸이 커서 읽게 되면...


어릴 적 나의 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다. 아이가 읽을만한 건 사슴 밤비 이야기가 있는 동화전집 1질, 퀴리 부인 등 스무 명의 역사적 인물 그린 만화 위인전 1질,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다 얻어온 책들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어른들은 과수원 농사를 짓느라 바빴으며 아이들 교육이나 삶의 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책을 볼 때는 심심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았다. 서는 친구 덕에 도서관을 알게 되어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종종 들러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땅히 읽을 게 없으면 달력 아래의 광고 글씨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에서 저병 같은 사과이름과 다이센 엠 같은 농약 이름 외울 정도로 들여다봤고. 교차로 신문이나 가계부 구석구석에 인쇄된 생활 정보, 굴러다니던 얇은 잡지에 실린 우습거나 야릇한 이야기들도 몇 번이고 읽었다. 


몇 안 되 어른 책 중에는 시집간 고모가 남겨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었다. 오래된 문고판 작고 도톰한 책에 깨알만 한 글씨들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셰익스피어라는 이질적인 발음의 작가가 쓴 것이야말로 진짜 책이라고 느꼈다. 어린 내가 보기에 우리 집에서 가장 고급진 물건이었고, 지적인 어른의 상징 같았다. 그래서 정작 그 책은 읽지를 않고 늘 바라만 보았다. 


나중에 고등학생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서 내친김에 미오와 줄리엣도 당시  책으로 읽었는데, 막상 유치한 사랑 이야기여서 조금은 실망럽기도 했다. 

다만 모가 읽은 책을 내가 커서 같이 읽다니 좀 묘한 느낌었다. 

고모는 왜 이 책을 샀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이런 비극적인 사랑을 동경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 우리 집 거실 한 면은 전부 책장으로 되어있다.

소위 책 육아라는 것 선호해서 아니고, TV가 없어서도 아니다. 계속 꺼내봐야 하는 전공서가 많아서 책 놓을 공간 부족 때문 거실을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아래쪽에 아이들 책도 있지만, 전체 의 절반 이상은 어른 책이다. 전공서 외에 나는 소설 에세이, 육아서 약간 있고, 남편은 역사서와 존경하는 인물의 서전 등을 가지고 있다. (만화책은 별도 보관 중이고.)



이렇게 늘 보는 곳에 책이 나와 있으니 아이들 언젠가 크면 엄마인 나의 책 관심을 보일지 가끔 궁금해진다. 내가 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우러러보고 특별하게 여겼던 것처럼, 혹시 그럴지...


난 은희경 작가님의 작품에 담긴 냉소적인 느낌이 은데 도 그런 취향을 선호할지... 아니 아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지... '삶은 농담'이라는 말을 가지고 서로 의견을 나눌  까? 그 시간이 기대만큼 풍요로울까?


어느 날,  큰 아이가 <채식주의자> <실의 시대> 같은 책 꺼내 으려면 어쩌지?

워낙 유명하고 문학성 면에서 극찬하지만, 일부 적나라하고 짙 그 묘사들을 읽으면?

김애란 작가님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을 시누이에게 빌려주고는 형부와 처제의 이야기 때문에 아차 싶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소년이 온다> 같은 시의적 작품이라 해도 또 어찌 읽히겠는가.

읽고 나서 3일은 꼬박 심장이 조여왔는데. 

읽으면  역사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충격을 을텐데 떻게 지켜보지?


아직은 내 책 중에서 테두리가 노랗게 변한 <어린 왕자>에 관심 갖는 딸이라 다행이다.  책도 있는데 굳이 옛날 책을 가져가더니만, 른들을 위한 동화라 그런지 아이는 아직 감동 못 느끼돌려주더라만.

쓰고 보니 쓸데없는 고민 같기도 하다. 나야 자라면서 부모님과 책 한 권을 같이 읽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른데... 더 어려서는 그림책을 함께 보았고, 요즘에는 장편 동화책을 가끔 같이 읽듯이,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독서는 이어질 텐데...

크면 그 수준에 맞게 당연히 어른의 책을 읽는 건데 미리 걱정할 필요 있겠나.


막상 좀 실망하고, 궁금해하고 그러겠지 뭐.

아마도 예전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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