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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드 Aug 06. 2024

마음 빨래터


마음이 무슨 속옷이라도 된단 말인가.

몸에 걸쳐 있지만 아무나 쉽게 아이스께끼(!)

들춰 볼 수 없는 그것처럼 말이다.


마음에 관한 한, 꽤 골몰하며 살면서도

언제 내 마음 한번 빨래해 본 적이 있나 싶다.

그저 수북이 쌓인 마음들이 있을 뿐.


한시도 만만한 날이 없었다.


첫애를 낳고 한 해 걸러 둘째를 겁 없이 낳고

하나를 유모차에 싣고 하나를 아기띠에 들쳐 매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거나 근처 슈퍼에서

반찬거리를 사 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시댁과 친정 도움 없이 키우는 집은

나뿐인 거 같아 서글펐고

다른 집 부모는 언제나 다정하고 현명해 보였다.

      

첫째 아이 시력이 나쁜 것도

둘째 아이 피부 질환도 다 내 탓이었다.

벅벅 긁힌 아이의 작은 허벅지에

스테로이드 연고가 마를 날이 없던 여름,

습하기는 왜 이리 습한 건지.


묵은 빨랫감을 쌓아둔 것 같은 마음에서는

쉰내만 펄펄 풍기는 듯했다.


수문이 열린 금강보에서 강물이 콸콸콸 세차게 흘러간다.

누가 금강 변에 식탁 의자를 가져다 놓은 걸까.

의자에 앉아 식사처럼 강물을 맛본다.      

얼룩덜룩한 마음의 찌든 때가 씻겨나간다.

강물이 흘러서일까.

내가 흐르고 있어서일까.   

  

생각해 보니,

금강 변에 터를 잡고 사는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이웃들이

내 안으로 흘러왔다.


이른 복직으로 첫애는 팔 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돌 때쯤 아이가 폐렴으로 건양대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정미정 선생님은 퇴근하고서 먼 데까지 파리바게뜨 롤케이크를 들고 병문안을 왔다. 나보다 우리 아이를 더 애틋하게 안아주시는 분. 동네 육아나눔터는 안 가 본 데가 없다. 어느 날은 참외 봉지와 지갑이 든 기저귀 가방을 금강 수변 공원에 놓고 오기도 했다. 다음날 가 보니 그 자리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신없는 이웃이 조만간 찾으러 올 거란 믿음처럼. 김밥 한 줄을 사도 어묵을 서비스로 꼭꼭 담아주는 김밥집 사장님. 뽀로로 쿠키를 사달라고 떼쓰는 둘째에게 누나랑 나눠 먹으라고 뽀로로 쿠키 두 개 쥐어 주시는 빵가게 사장님. 방앗간처럼 들락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이 물건을 진열하다가 종알대는 두 녀석에게 ‘서비스’처럼 죠스바 사탕을 건네주시는 무인가게 사장님. 아이들 등원 길에 “그새 많이 컸네?” 못 본 체하지 않는 아파트를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과 헬스장 도우미. 수선집 사장님. 꽃집 사장님 등등 금강에 와서 맺은 인연을 생각하니 이 여름이 끝이 없을 것만 같다. 당근마켓으로 인한 인연도 최근 생겼다. 오래 끌고 다닌 고가구 수납장을 나눔 한 것인데 이분은 미술 선생님이다. 십 년 후 퇴직하면 고가구 갤러리를 여는 게 꿈이라고 한다. 수납장을 농막에 설치해 놓고서는 “너무 좋은 인연을 알게 되어 너무 행복하네요”라고 웃는다. 새 단장하는 마음들. 당신이 그러한 것처럼 나 역시 흘러가는 이웃이고 싶다.      


마음 빨래터가 어디냐고?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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