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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다 Oct 02. 2019

'표류'나 '유랑' 아닌 그들의 '항해'

악뮤 정규 3집 "항해" 리뷰

               




‘항해’라는 음반 제목은 자유, 이별, 방랑 등 여러 단서로 풀이될 수 있다. 그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음반에 구현된 음악과 교차해놓으면 결국 교집합의 중심에 남는 것은 ‘속박으로부터의 탈피’이다. 흔히 미디어에서 소비되던 ‘악동뮤지션’ 특유의 재간 넘치는 이미지 대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뮤지션만이 남았다.









트랙 별 리뷰



<뱃노래>는 항해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단조의 음울한 분위기와 ‘이수현’의 차분한 음색이 애절함을 더한다. ‘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아’라며, 자유롭지 못한 이가 자유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다룬다. 보컬을 뼈대 삼고 기타를 얹은 뒤 현악으로 감싸는 구성은, 비장미 넘치던 당대의 포크 음악과도 일면 맞닿아 있다. 반어적 가사와 가라앉은 곡 분위기가 어설프지 않은 것은 이들의 성숙을 방증한다.


<물 만난 물고기>의 경쾌한 분위기는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너는 꼭 살아서 죽기살기로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해줘’라는 가사를 통해 죽음을 목도한 이가 삶이 남은 이에게 전하는 당부를 전한다는 점에서 이번 음반의 주제적 방향성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이 ‘항해’의 주제가 되는 만큼, 결국 ‘진정한 자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죽음에까지 가닿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사를 얹은 곡이 컨트리 사운드를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은 음악적으로 이들이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발라드 우세 성향의 현 음악 시장을 겨냥한 곡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교묘하게도 그런 공식으로는 풀이되지 않는다. 흔히 ‘지르기’ 위한 목적으로 배치된 부분도 없고, 청자를 감정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한 장치도 없다. 듣는 이를 먹먹하게 만들고 듣다 보니 스며들게 만드는 이 곡은 악뮤의 음악적 철학과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양산형 발라드라는 ‘치트키’가 난무하는 현 시장에 96년생 · 99년생 듀오는 그들만의 음악적 철학으로 답했다.


<달>은 달을 보며 연인을 떠올리는 내용의 곡이다. 음반 초반과는 다른, 알앤비 기반의 현대 인디씬에 가까운 어쿠스틱 사운드를 갖췄다. ‘자막 없이 밤하늘 보고 번역 없는 바람 소릴 듣지’에서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사랑에 대해 다루지만, ‘눈물이 고이네 슬퍼서’ · ‘음소거로 소리 없이 흐느낀’ 등을 통해 여전히 현실적 제약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곡의 분위기에 맞춰 발음의 명확도를 과감히 바꿔낸 ‘이찬혁’의 곡 몰입도가 꽤 흥미롭다.


<프리덤 Freedom>은 <물 만난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음반 내의 중심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치 상실과 무목적이 아니라 뚜렷한 가치관과 주체적 삶의 실현을 자유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투표, 표현, 팬과 안티마저 ‘자유’로 일컫는 것이다. 언뜻 ‘콜드플레이 Coldplay’가 떠오르는 듯 기타 소리로 쌓아 올리는 청량한 분위기와 자유를 갈망하는 가사의 조화를 통해 인디밴드로서의 악뮤가 눈앞에 펼쳐진다. 혹은 그 옛날 포크 음악의 시대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 및 재해석했다는 느낌마저 준다.


<더 사랑해줄걸>은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보같은 과거를 끊임없이 뇌까리는 구성은, 악뮤 초기에 포착된 익살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사를 얹은 곡이, YB 같은 밴드들도 ‘레트로’ 목적으로 도입할법한 로큰롤 스타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음반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장르 도입과 운용의 폭을 실감케 하는 트랙이며, 다소 심오한 이번 음반 내에서 꼽을 수 있는 드라이빙 음악이다.


대부분의 정규 음반이 절정부로 치닫기 시작한 7번 트랙에서 악뮤는 또 다시 변화를 선택한다. <고래>는 이번 음반에서 가장 독특한 트랙이다. 고래에게 ‘너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곡은 한없이 시크하다. 기타 반주, 클랩 비트, 현악 소리 위에 얹힌 저음역대의 후렴부는 90년대에 유행하던 초기 힙합 기반의 대중음악을 연상케 하며, 벌스(verse) 진행 도중 삽입된 전자피아노 소리와 후렴부 뒤에 이어지는 휘파람은 현대 대중음악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 <고래>의 가사는 더 이전의 시대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복잡한 요소들을 무지막지하게 섞어내는 데에 중점을 둔 게 아니라, 세밀한 배치를 통해 교묘한 흐름을 형성하여 노래를 듣는 내내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을 준다.


<밤 끝없는 밤>은 달달하고 예쁜 분위기에서 바다를 떠다니는 모양과 심리를 표현한 곡이다. 잠을 자는 밤의 시간들을 유영하는 듯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잠의 달콤함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특이하게도 ‘내 머릿속에선 부지런히 할 일을 재촉하는 걸’ · ‘이러다가 영원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등의 가사를 통해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에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어쿠스틱 악기 소리만으로 채워지지도, 마냥 밝은 내용을 노래하지도 않아 여러 면에서 입체감을 지닌 곡.


<작별 인사>는 잔잔한 기타 반주와 하모니카로 채운 간주, 이수현의 차분한 음색이 돋보이는 포크 음악이다. ‘떠날 때 책장에 먼지가 쌓였길래 책 하나 속에 꽂아 두었어요 짧은 편지를’, ‘정든 찻잔도 물기 배인 마루도 의미를 알기 전에 바꾸지 말아요’ 같은 가사는 ‘꽤 잘하네’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솜씨를 증명한다. 아이유가 기타 버전의 <무릎>을 공개했을 때처럼, (특히 중장년층)청자를 어루만지는 솜씨가 꽤 충격적이다.


<시간을 갖자>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권태기를 다룬 곡으로, <프리덤>과 어느 정도 유사한 분위기를 갖췄다. 수록곡들 중 이찬혁의 보컬 비중이 가장 높은 곡으로, 프로듀서로 물러나 배분된 파트를 소화하거나 화음에 충실했던 이찬혁이 음반 후반부에 이르러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인상이다. ‘시간을 갖자 우리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없이 남이 될 바엔’, ‘이때껏 믿어왔떤 것이 더럽혀지지 않도록’에서는 관계에 대한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 어느덧 ‘성장한 악뮤’를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워졌음을 실감케 한다. 페이드 아웃으로 아련하게 물러나는 곡 후반부는 끝맺지 않은 항해의 여운을 남긴다.







총평


자유라는 주제는 음반 전체를 관통하며, ‘속박으로부터의 탈피’를 각 트랙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추구한다. 독특한 시각의 동심은 어느새 성숙된 철학적 시야로 대체되어 있으며, 사소한 일상의 포착을 통해 자유 · 죽음 · 사랑 · 이별 · 후회 등 심도 깊은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트렌드의 자리에는 음악적 주체성이 대신 서 있으며, 자극과 절규는 일관된 주제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고뇌에 자리를 내주었다. 끝없는 고민 사이를 떠다니지만 이를 ‘유랑’이나 ‘표류’로 명명하지 않은 것은 그들만의 분명한 가치와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며, 다양한 장르와 소재가 결합된 이 음반이 뚜렷한 색채를 갖는 것은 그러한 악뮤의 철학이 뚜렷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정규 1집의 발랄함과 사춘기 시리즈의 성장을 거친 덕에 이번 정규 3집의 ‘심도 깊은 화자로의 성숙’은 청중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폭넓은 장르 선택과 운용은 ‘트렌드’의 속박과 ‘다양성에 대한 압박’이라는 속박 모두에서 벗어나 있어서, ‘자유’를 골자로 한 이번 음반의 목적 달성에 크게 기여한다. 발라드 트랙의 보컬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요소로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외에는 트렌드를 의식한 음악이 보이지도 않는다. 포크 · 복고 · 팝 · 로큰롤 등의 장르들은 ‘악뮤’ 그 자체의 존재감 안에 자연스레 스며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히트 방정식이 없다’는 박수진 평론가의 평론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음반은 악뮤 음악 인생의 향배에 기점 역할을 할 것이다. 악뮤가 거대한 이름이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음반으로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악뮤는 진짜 ‘뮤지션’의 길을 묵묵하게 걷고 있다.







악뮤 (악동뮤지션)

이수현(보컬), 이찬혁(보컬, 프로듀서)




2012 11 18  에스비에스 “케이 팝 스타 시즌 2” 출연

2014 04 07  정규 01집 “Play” - <Give Love>, <200%>, <얼음들>

2014 10 10  디지털 싱글 “시간과 낙엽” - <시간과 낙엽>

2016 05 04  미니 01집 “사춘기 上” - <Re-Bye>,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2017 01 03  정규 02집 “사춘기 下” - <리얼리티 (Reality)>, <오랜 날 오랜 밤 (Last Goodbye)>

2017 07 20  디지털 싱글 “Summer Episode” - <Dinosaur>, <My Darling>


2019 09 25 정규 03집 “항해”

 01  뱃노래    *추천

 02  물 만난 물고기    *추천

 03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추천

 04  달

 05  Freedom

 06  더 사랑해줄걸

 07  고래    *추천

 08  밤 끝없는 밤

 09  작별 인사    *추천

 10  시간을 갖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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