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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Aug 27. 2020

질풍노도의 밤

역시 바람은 좋다. 무더운 여름,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역동적인 흐름으로 쌩~하는 효과음을 앞세워 온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나뭇가지가 춤을 추고 창문이 덜컹거리고 비도 흩뿌렸다가, 이 모든 게 자신의 존재감인 양 휘잉~소리로 으르렁댄다. 그야말로 어제는 광란의 밤이었다. 그 난리 통에 잠은 한숨도 못 잤지만 왠지 후련했다. 일 년에 몇 번뿐인 태풍이 몰고 오는 질풍노도의 밤, 일생에 한 번뿐인 청춘이 그랬었나. 나는 폭풍으로 질풍노도를 그리워한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 질풍노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선생님은 단정지어 주지 않았다. 단지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해주었을 뿐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은 선생님은 결정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격동적인 감정변화’를 누를 것이냐 분출할 것이냐는 그때그때마다 선택의 문제이기에.


이제껏 살아보니 나는 ‘분출’에 한표다. 바다가 뜨거운 태양열을 받아 서서히 달아오르다 임계점에 달했을 때 에잇~ 하면서 돌아버리는 게 태풍이다. 북반구에선 반시계 방향, 남반구에선 시계 방향으로 돈다는데 어쨌든 열받으면 돌아버리기는 지구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자연도 그러할진대 우리 인간도,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단다. 실제로 한번 휘몰아친 태풍에 바다가 뒤집어져 녹조현상도 방지하고 밑바닥의 영양분도 올라와 물고기의 먹이도 되고 해류도 순환시키고 공기 중에 정체되어 있는 오염물질도 날려주고 비도 몰고 와 가뭄도 해소시키고 적도에 몰려있는 에너지를 고위도지방으로 분산시켜주고, 이렇듯 태풍은 지구 건강에 도움을 준다.


© skeeze, 출처 Pixabay


하루하루 살면서 일상이 주는 권태로 인해 쌓이는 게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다. 결국 사춘기 때만이 질풍노도가 오는 건 아닐께다. 한 번은 배출하거나 한 번은 불태우거나 한 번은 휘날리거나. 단 사춘기 때와는 달리 성인으로서 정제된 그러나 그때와 못지않은 다이내믹이 필요하다. 오히려 꾹꾹 눌러 참고 또 참고 그러면...


지구에는 또 하나의 습성이 있다. 꾹꾹 참고 또 참는 것. 옆에서 자꾸 건드리고 스치고 눌러도 묵묵히 쌓아두는 것. 그러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성질을 내는 것, 바로 지진이다. 자기도 어쩔 줄 몰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통제되지 않는 분출, 이건 위험하다. 지구 밑바닥 맨틀의 대류로 인해 떠다니던 대륙판, 해양판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응력(stress)을 축적하다 한순간에 지진파로 방출한다. 과학적으로 지진이 주는 이로운 점은 없다. 지진은 그냥 파괴다. 그 후유증은 쓰나미고. 예측할 수 없는 분출은 그래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그러다가도 아니 오늘은 좀 해소해야겠는걸.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 가서 좀 망가지기도 하고, 아니면 격한 운동으로 땀을 흘린다든지, 아님 또 뭐가 있을까. 태풍이 또 올라온다고 한다. 기대된다. 태풍으로 대리배설이라. 단지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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