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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Nov 21. 2020

불타는 청춘

요즘 예능 프로인 ‘불타는 청춘 몰아보고 있다. 한때의 리즈시절을 보내고 아직도 미혼이든 돌싱이든 싱글 라이프를 살고 있는 ‘청춘들이 나온다. 지금의 나이야 어쨌든 이미 젊음에서 멀어져  청춘들이 오빠, 누나라는 격의 없는 호칭에 ‘,  맞받는다. 서로의 나이 차이는 인정하면서도 지나간 자신들과의 세대 차이는 잊어버린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 활기찬 표정과 장난기 어린 몸짓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젊어진다. 그들의 패션은 나이를 벗어버리고 그들의 대화는 민낯을 드러낸다. 여전히 청춘이 불타고 있음이다. 미모를 자랑하던 여배우도, 야성미를 풍기던 로커도 세월의 흐름에 어쩔  없다지만  눈빛만큼은 그대로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마음은 항상 젊음으로 가득하기에...

                             

세월의 흐름은 결국 물리적이구나. 회상으로 시간을 넘나들어도 내 몸은 항상 현재에 묶여 세월에 스치고 패이고, 오롯이 눈빛만 깊어진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알았다. 거울 옆에 있는 10여 년 전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증빙자료가 되버린다. 성형외과가 아닌 세월이 집도한 비포 애프터, 방향은 반대지만 자연스럽기만 하다. 겉모습은 그렇다쳐도 내면만큼은 내가 성형해야겠다. 젊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 아빠가 나어렸을 적 용돈 주실 때 좀 색다르게 주셨는데요.

- 어떻게요?

- 우리 아빠 양복 재킷 중 안주머니에 비밀 지갑이 있었어요, 아빠랑 나만이 아는...

-그래요?

-그래서 그 지갑에 용돈을 넣고는 어느 날 아빠가, 장롱 몇 번째 재킷 안 지갑에 돈 있으니까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 하시면서 깜짝 용돈을 주시는 거죠

- 아버님이 되게 사랑이 많으셨던 분인 것 같아요.

- 네... 나중엔 제가 커서 아빠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재킷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드렸어요.

-아빠가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지금 어디 계신데요?

-저 위에요... 하늘나라에 계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여배우는 초롱한 눈빛의 어린 소녀가 된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기도 하고... 길 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추억에 그녀의 눈빛이 깊어진다. 보는 나도 울컥하며 흔들거리지만 둔덕을 지나 다시 정주행하며 다음 회차를 클릭한다.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배가 항구를 떠나 수평선 위의 점으로 사라지듯 세월이 자꾸 두 분에 대한 기억을 밀어내고 있다. 점점 그렇게, 바람에 펄럭이던 돛이 갈매기의 날갯짓이 되고 출렁이던 뱃고물이 반짝이는 윤슬에 묻힐 때면 점이 되버린 엄마 아버지도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겠구나.                                                 


일단 빽빽한 도심을 떠나 자연을 배경으로 하니 자연스러운 감성의 흐름이 회복되어 잊혔던 것들이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건가. 힐링이 발동되는 시점이다. 이렇듯 불청이 여행이라는 포맷에 콘텐츠를 담다 보니 때마다 식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계의 굴레가 확연해진다. 무엇을 먹을까라는 결정부터 그에 따른 식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다 차린 후엔 추우나 더우나 마당의 널다란 평상에서 다 함께 식사하고 나중에 설거지까지... 혼자였으면 후딱 해치울 수도 있는 한 끼 식사가 부풀려지니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된장찌개에 웃음 한 큰 술, 따끈한 정도 두 큰 술 들어간다.


결국 산다는 건 먹는 거다. 서로의 생존에 각자의 품을 보태는 가장 근원적인 행위에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생긴다. 먹은 밥보다 든든하다. 그야말로 ‘같이’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가족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이젠 중년들끼리 누나, 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나도 불청 가족의 일원이 된다.                                              


1인 가구가 갈수록 늘어난다는데, 그래서일까. 오프라인은 외로워도 온라인은 훈훈해진다. 집 앞 공원에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엄마들이 모여있다. 육아에 관한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었나 본데 아뿔싸! 유모차에는 아기들이... 털 달린, 네 발 달린 아기들이 (들어) 있다. 작은 평수 울 아파트엔 펫맘 카페가 있나 보다. 펫도 없는 나는 어느 라인을 타야 외로움을 달래나.                                                



모니터를 잠시 멈춤하고 커피 한 잔을 내린다. 한 상 가득 식사하는 걸 봤으니 나도 모르게 커피가 당긴다. 다 함께 먹고 떠들고 웃느라 입 하나로 바빴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는데... 왁자지껄했던 모니터의 여운이 커피향과 섞인다. 코로나로 입원 격리 이십여 일 동안 줄곧 넷플릭스만 봤다는 어느 환자의 얘길 들었다. 불안한 와중에도 무료함은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아득히 먼 옛날 무리 지어 사냥하며 생존을 함께 했던 습성이 DNA 이중나선을 타고 여기까지 내려온 게다. 우리는 ‘혼자’보단 ‘함께’라야 더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 어쩐지 ‘나 혼자 산다’ 보다 불청이 더 재밌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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