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연휴가 끝났다. 아기도 어리고 병아리들이 급 부화를 시작하는 바람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콕했던 하루하루. 그나마 지루하고도 쉴새없는 연휴를 유쾌하고 달달하게 해준 소설이 있어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게이 엉클에 관한 책, 겅클이다.
책 제목이 겅클인데, 게이gay와 엉클uncle의 합성어이다. 영어권에서는 실제로 쓰이고 있는 말일 것 같다. 책 표지는 예쁘고 화려한 꽃그림으로 장식이 되어있는데, 소설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스티븐 롤리인데 대학에서는 영화를 전공했다고 하고, 출간한 소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큰 인기를 얻었던 것 같고 두번째 소설인 '에디터'는 20세기 폭스사와 영화판권 계약을 했다고 하니 성공한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영화를 전공해서인지 글이 영화화되기 쉬운 면이 많은가보다. 이번 책 '겅클'도 이 책을 영화로 본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로도 충분히 좋았다.
책의 제목이 겅클, 게이삼촌이니 삼촌이 있어야할것이고 조카가 있어야할텐데, 9살과 6살인 메이지와 그랜트의 엄마 세라가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아빠인 그레그는 약물중독으로 재활원에 가게되면서 아이들은 그레그의 형인 페트릭이 맡게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페트릭은 왕년에 헐리우드에서 성공했던 스타이지만 개인적으로 힘든일을 겪고, 한편으로는 헐리우드 문화에 마음이 떠나고 또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지면서 LA에서는 2시간 정도 떨어진 팜스프링스에서 살게된다. 페트릭이 메이지와 그랜트를 맡게된 것은, 그 아이들이 조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페트릭이 세라와 결혼전에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페트릭이 3개월동안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상실을 극복하고, 페트릭 자신도 세라라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더불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오랜 상처를 치유해가는 시간을 갖게된다.
간단하게 스토리가 정리되는 소설이지만, 반전이 있거나 한 스릴러가 아니기에 내용을 스포일했다고 해서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부분에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연휴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정한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페트릭이라는 인물의 특성 때문일 것 같다. 페트릭이 주인공이고 등장인물중 다른 누구보다도 그에게 호감을 많이 느낀다. 수다스럽고, 섬세하기도 하고 쿨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픔을 겪어왔기에 상대방의 아픔에도 공감할줄아는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지나침은 없지만 열려있고 성숙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곁에두고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트릭과 두 아이들의 조합도 흥미로웠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도 겅클로 지었을것 같다. 게이삼촌이 조카들을 돌본다고? 하는데서부터 벌써 궁금해지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이 셋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로는 조금은 자유롭고 포용력있는 삼촌이 아이들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적응해가는 과정 말이다. 흔히 상상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내용전개가 되기 때문에 이 책도 영화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은 페트릭과 세라가 각별한 사이라고 전해듣기만 했지 수긍할만한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이다. 에피소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둘의 사이가 특별하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세라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이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는 더 큰문제였는데, 이 책이 상실에 대해서 다루기는 하지만, 깊이 접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책이 끝날때까지도 나는 뭔가 페트릭과 아이들이 상실을 대면하는 깊은 무언가, 진지한 어떤 장면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덤덤히 지나가고 말았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9살 6살짜리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싶다고 울고불고 하는, 혹은 통제불능상태가 되는 그런 상황이 어떻게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가? 혹은 그 아이들이 아주 우울해진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인데, 그런것도 아니었다. 그런것을 보면 엄마, 혹은 친구를 잃은 '상실'이라는 것이 좀 장식적으로 쓰였다는 느낌이 들게한다. 소설의 소재로서말이다. 상실을 깊이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문제는 이것이 어쩌면 모든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싶지 않아하는 미국적인 정서의 반영인가 싶기도 하다. 쿨한 것을 좋아하듯이 상실도 쿨하게.. 하지만 가족의 상실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상실은 그렇게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앞서 말한 아이들다움이 충분히 돋보이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어서 페트릭의 조카들이 등장하는 것도 페트릭을 돋보이게 하기위한 장치였나 싶다. 이런것이 전반적인 소설의 문제로 부각되는데, 소설을 읽고나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페트릭 뿐이라는 점이다. (옆집 존도 약간 호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쭉 적다보니 나는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달려드는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가볍에 읽는 소설에 상실에 대한 치유까지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휴 혹은 여가시간을 유쾌하고 달달하게 보내고픈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말했듯이 상실에 대해 깊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할마한 책은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