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전진했다는 느낌
기획자는 매일 부족함과 함께합니다. 시간은 항상 충분하지 않고, 일은 항상 예상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데이터가 없는 것은 다반사이고, 요청에 대한 회신은 성에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기획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은 일은 항상 생기고, 이로 인해 무언가 약속을 했을지라도 약속이 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나는 항상 무언가를 몰랐고, 미래의 나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할 것입니다. 이미 부족함이 없는 것은 기획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기획자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 중 하나가 수많은 부족함으로 둘러싸여 일한다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함을 채우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부족함이 떠오릅니다. 때로는 부족함에 압도되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렇게 하면 이것이 부족하고 저렇게 하면 저것이 부족하고라는 무한의 굴레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프로젝트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납니다. 특히 이 무한의 굴레에 빠져 이미 많은 시간을 썼다면, 시간은 지났는데 뾰족한 방안을 내지 못함에 초초함이 불어닥쳐 포기하고 싶은 감정이 듭니다.
상기의 감정은 기획업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느꼈을 감정입니다. 특히 매일 가만히 있어도 일이 주어지던 오퍼레이션베이스의 업무에서,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찾고 제안해야 되는 기획업무로 전환한 이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저역시도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기획을 할 때는 항상 부족함에 압도되지 않으려 무척이나 노력합니다.
'결함이 아니라 부족함입니다'라는 말은 국내 모기업에서 소비자에게 이야기해 공분을 샀던 문장입니다. 그러나 기획자는 저 문장을 항상 돼 내어야 합니다. 특히 부족함을 참지 못해 부족함을 결함으로 느끼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한 기획자는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장입니다. 부족함을 결함으로 느끼는 순간 기획의 반짝이는 의미를 스스로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기획자가 부족함과 함께하는 이유는 부족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이상적인 가설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에 기준을 두면 기획의 매 순간은 나의 생각이 틀림을 증명받는 일상이 됩니다. 불확실성이 즐비한 기획의 영역에서 결코 같을 수없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부족함에 집중하면 지속가능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바꿈으로써 부족함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 관점에서 보면 기획이 의미를 갖는 기준은 개인의 이상이 아닌 현재의 상태입니다. 왜냐면 이상은 기획자에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니까요. 기획자의 이상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현재 상태보다 한걸음이라도 나아간 기획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이상에 대한 부족함에 압도되어 고민과 걱정과 번뇌에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당시에는 부족하더라도 한걸음 내딛는 것이 무조건 더 좋은 선택입니다. 그 한걸음이 미래의 나 혹은 누군가에게는 레버리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은 기획자가 성장함에 있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부족함의 동전의 양면인 나아감에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오랫동안 이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상 기준의 부족함이 나의 기획을 끌어주고 현실 기준의 나아감이 나의 기획을 뒷받침해 주는 균형적인 감각이 기획자라는 커리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기초체력입니다. 혹시 지금 나의 기획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부족함으로 인해 너무나 지친다면, 나아감에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한걸음이라는 생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