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우루 Apr 18. 2024

차(Tea)를 마신다는 건,

시간과 공간이 변함에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위로와 안정을 준다.

많은 것이 달라진 이곳에서 나에게 변함없는 위로를 건네는 것은 차(Tea)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물을 끓이고, 오늘의 컨디션이나 뱃속사정(?)을 확인한 후 차를 고른다. 그렇게 30여분 정도 따뜻한 차를 충분히 마시는 일은 서울이든, 밴쿠버든 변함없이 이어지는 나의 하루의 시작이다.


특정 기호식품에 대해 깊은 애정과 취향을 갖는다는 것, 차를 좋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커피, 와인, 위스키 애호가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품종, 산지, 기후, 연도, 제조사 등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들을(우리가 느끼기엔 엄청난 차이지만) 섬세하게 찾아내서 귀한 것이 왜 귀한지 알게 되는 기쁨. 그 섬세함의 미학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다.


처음 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몸을 돌보기 위함이었다. 흔하디 흔한 암 수술 후 내 몸에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싶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자.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차를 마시는 시간을 선물하자.


차를 마시면 무엇이 좋냐 묻는다면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아침에 따뜻한 차를 마시는 일은 대장 운동을 돕는다.

차를 마신 후 느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좋은 변화였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 예민한 녀석(?) 탓에 집을 떠나 해외로 가면 수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아침시간 30여분의 티타임 후에는 어김없이 자연의 부름을 받는다.

또한 아침에 충분한 양의 따듯한 차를 마신 후 (여기서 개인적으로 나에게 충분한 양은 1L 정도 되는 듯하다. 난 지독한 물쟁이이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게 느껴지고, 가볍게 땀이 날 정도가 되면 마치 사우나를 다녀온 듯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다.


남편과 연애시절 차를 좋아하고, 다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머릿속엔 인사동에 오래된 찻집에서 쌍화탕을 마시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성수동에 한 티샵에 데려간 적이 있다. 공대출신 남편은 그곳에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는 모습은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찻물이 너무 뜨거워 잘 마시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한 김 식혀 주세요”라고 티마스터에게 요청하자,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무 멋있다”라며, 그 후 티샵에 갈 때마다 “한 김 식혀 주세요”를 꼭 하는 남편. 이제 그는 퇴근 후 집에 와 “여보, 우리 차 한잔 마실까? “라며 먼저 티타임을 요청하는 사람이 되었다. 차에 또 다른 장점이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준다는 점 아닐까.

차에 대한 애정은 여행의 모습도 조금 바꿔 놓았다. 비행으로 수없이 방문했던 익숙한 해외 체류지에서 로컬 차 브랜드를 찾아보고, 그동안 가보지 않은 현지 티샵들을 찾아가는 것은 낯선 기쁨을 주었다. 햇차가 나오는 계절엔 하동을 가고, 일본여행을 가면 말차와 다완을 사 오고, 대만으론 차 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이곳 밴쿠버에 와서도 먼저 했던 일은 현지 브랜드 차를 찾아서 마셔보는 것이었다. 밴쿠버에는 북미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대한 차이나타운이 존재하고, 홍쿠버라 불릴 정도로 많은 홍콩이민자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근처 상점이나 쇼핑몰에서 중국차를 파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가보고 싶은 티샵의 목록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온 도련님이 한국에서 유명한 차 브랜드의 티백을 내게 선물했다. “너네 형수님은 이런 차 안 마셔. 이런 건 하수들이 마시는 거지”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진정한 고수는 비싸고 좋은 것만 마시는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시는 기쁨 자체를 즐기는 거라고 말했다.

“나도 자기랑 같이 휘슬러에서 스키탈 때는 Easiest Route만 다녀도 재밌어.”

우리 집에 고수가 둘이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야, 영어야, 오~ 나의 영어야-part.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