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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14. 2022

수 술

  언제부턴가 오른쪽 고환 위쪽에 혹처럼 볼록 튀어나온 게 감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겠지, 하고 S는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커졌다. 오래 걷다 보면 다리가 저려왔고, 때로는 마비되는 것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하였다. 혹처럼 튀어나온 것하고 관련된 증상임에 틀림없었다. 서 있을 땐 볼록 튀어나와 있다가, 누우면 쑤욱 안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게 뭘까? 알 길이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고환 위쪽에 혹’이라고 입력하고 검색했다. 고환 종양, 부고환염, 요로 감염, 전립선염 같은 내용들이 나왔다. 아, 이런……. 오랫동안 여자와 관계를 맺지 못해서 일어나는 증상인가? 서글퍼졌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S는 자신의 증상과 가까운 것은 부고환염이라는 판단이 섰다.


  점심을 먹고 나서 비뇨기과에 들렀다. 의사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혹처럼 생긴 부위를 보여주었더니, 의사가 서혜부(사타구니) 탈장이라고 말하며 항문외과에 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S는 다시 인터넷을 통해 서혜부 탈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탈장은 자연 치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은 복강경을 통한 인공막 수술을 하는데, 무인공막 수술을 하는 곳이 서울에 한 군데 있었다. 


  혹시나 수술을 안 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방병원에 갔더니, 한방병원의 의사가 S에게 잘못 찾아왔다고 말했다. 한방에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수술을 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인공막 수술이 더 나아 보이지만 그 수술을 하는 곳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S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항문외과로 걸음을 옮겼다.


  초음파검사라는 걸 하게 되었고, 의사가 말하기를, 서혜부 관이 막혀 있지 않아 그 부분을 통해 장기가 빠져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서혜부 관이 막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혀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설명을 들어도 S는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구나, 하는 생각만 들 따름이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시골 의사」에서,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디 집뿐이랴. 자기 몸에 무엇이 있고 자기 몸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살아가지 않는가.


  5일 뒤에 S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의사가 세 명, 간호사가 다섯 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반신 마취를 했고, 전기면도기로 사타구니의 털을 밀었다. 그런 다음 수술이 진행되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수술이 이루어지는지 S는 물론 알 수 없었다. 배 위로 가림막이 쳐졌다. 가림막이 없다 해도 진행 상황을 지켜볼 용기 또한 없었다. 그저 빨리 수술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마취를 했음에도 가끔씩 따끔거리며 아팠다. 때로는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인하여 이를 악물어야 했다. 한 시간 삼십 분 정도가 지나서야 수술이 끝났다. S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되어 병실로 돌아왔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고 S는 드러누운 채 생각했다. 살다 보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여 타인에게 몸을 통째로 내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는데 타자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평소에 한없이 낮은 자세로 살아갈 일이다. 섣불리 판단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 일이다. 오만한 자세로 살아가는 건 스스로의 나약함을 숨기고자 하는, 또는 스스로가 강하다는 믿음 속에서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하지 않을까. 누구나 상처받기 쉽고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들이니 타자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하고 신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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