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룸 Feb 13. 2022

도대체 뭘 먹어서 이런 거야?

  밤에 출출해서,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러나 식당에 가면 양이 너무 많고 비싸고, 그래서 S는 마트에 가서 플라스틱 용기에 적은 양으로 담아서 파는 석쇠불고기와 함박스테이크 하나씩을 사왔다. 2500원씩, 도합 5000원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 1인 가구가 많아지다 보니 이런 식으로도 파는 것일 게다. 


  맛은, 없었다. 석쇠불고기는 냄새만 그럴 듯 할뿐 밋밋했고, 함박스테이크는 물컹물컹한 게 물 먹은 빵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어 크게 괘념치 않았다. 


  잠자리에 든 지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S는 깨어났다. 속이 좋지 않았다. 답답하고 미식거리는 느낌이랄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려고 해 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속에서 신호가 왔고, 화장실로 향했다. 설사였다. 몸이 요동을 쳤다. 아, 젠장. 욕이 나오고 분노마저 출렁댔다. 돈 쓰고 몸 버리고 이게 무슨 꼴이람.


  도대체 뭘 먹어서 몸이 이런 거야?

  S는 화장실에서 나와 한쪽에 치워두었던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살펴보았다. 석쇠불고기에는 ‘외국산(미국, 스페인 등), 마늘(중국), 대파(중국)’라고 적혀 있다. 미국, 스페인 등이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 조각의 고기에 몇 개 나라의 고기가 섞여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지 스페인인지 그 밖의 어떤 나라에서 온 고기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인가. 함박스테이크에는 ‘49%(호주/뉴질랜드), 빵가루(곡류가공품, 소맥분, 조직대두단백, 토마토케첩, 햄), 오렌지화이바, 산소조절제, 글루타민산’이라고 적혀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정체불명의 성분들이 정말 많이도 들어갔다. 49%라는 건 전체 내용물에서 소고기가 차지하는 분량을 의미할 터인데, 호주와 뉴질랜드의 소가 과연 몇 퍼센트씩 섞여 있다는 건지…….


  도대체 뭘 먹은 걸까. 소나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키워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입으로 들어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S가 아는 거라곤, 마트에서 샀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했다. 먹을 것은 차고 넘치지만 무엇을 먹어야 좋을지, 아니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기농’이나 ‘동물 복지’ 표기가 된 제품만 골라서 사 먹자니, 비싸다. 게다가 그런 상품이 얼마나 제대로 된 유기농이고 동물 복지인지 어찌 안단 말인가. 영국의 펑크록 밴드 The Clash의 노래 중에 ‘Lost in the supermarket’이라는 곡이 있는데, 마트나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정말이지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든다.


  자신이 뭘 먹는지도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편리라는 이름의 산업 시스템에 볼모가 되어 갈수록 시스템에 의존적이 되어가고 실체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삶에서 해방될 길은 정녕 없는 걸까. 


  가장 좋은 건 자급자족이리라,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화장실에서 돌아와 여전히 잠 못 들어 하며 S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떻게? 에 생각이 이르니 막막해진다. 모든 게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에 줄곧 의탁하며 살아가다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저 역사책 속에서나 들어봤던 자급자족이라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과연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그렇다면 차선책은 믿음을 주는 생산자들과의 직거래일 텐데, 그건 몹시도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 알람 소리에 힘겹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S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다시금 설사를 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언제나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편리한 사고방식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결단을 내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볼 것인가…….

  S는 여전히 속이 좋지 않다.


이전 16화 마음이 진창 속을 헤맬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