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출출해서,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러나 식당에 가면 양이 너무 많고 비싸고, 그래서 S는 마트에 가서 플라스틱 용기에 적은 양으로 담아서 파는 석쇠불고기와 함박스테이크 하나씩을 사왔다. 2500원씩, 도합 5000원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 1인 가구가 많아지다 보니 이런 식으로도 파는 것일 게다.
맛은, 없었다. 석쇠불고기는 냄새만 그럴 듯 할뿐 밋밋했고, 함박스테이크는 물컹물컹한 게 물 먹은 빵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어 크게 괘념치 않았다.
잠자리에 든 지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S는 깨어났다. 속이 좋지 않았다. 답답하고 미식거리는 느낌이랄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려고 해 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속에서 신호가 왔고, 화장실로 향했다. 설사였다. 몸이 요동을 쳤다. 아, 젠장. 욕이 나오고 분노마저 출렁댔다. 돈 쓰고 몸 버리고 이게 무슨 꼴이람.
도대체 뭘 먹어서 몸이 이런 거야?
S는 화장실에서 나와 한쪽에 치워두었던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살펴보았다. 석쇠불고기에는 ‘외국산(미국, 스페인 등), 마늘(중국), 대파(중국)’라고 적혀 있다. 미국, 스페인 등이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 조각의 고기에 몇 개 나라의 고기가 섞여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지 스페인인지 그 밖의 어떤 나라에서 온 고기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인가. 함박스테이크에는 ‘49%(호주/뉴질랜드), 빵가루(곡류가공품, 소맥분, 조직대두단백, 토마토케첩, 햄), 오렌지화이바, 산소조절제, 글루타민산’이라고 적혀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정체불명의 성분들이 정말 많이도 들어갔다. 49%라는 건 전체 내용물에서 소고기가 차지하는 분량을 의미할 터인데, 호주와 뉴질랜드의 소가 과연 몇 퍼센트씩 섞여 있다는 건지…….
도대체 뭘 먹은 걸까. 소나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키워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입으로 들어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S가 아는 거라곤, 마트에서 샀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했다. 먹을 것은 차고 넘치지만 무엇을 먹어야 좋을지, 아니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기농’이나 ‘동물 복지’ 표기가 된 제품만 골라서 사 먹자니, 비싸다. 게다가 그런 상품이 얼마나 제대로 된 유기농이고 동물 복지인지 어찌 안단 말인가. 영국의 펑크록 밴드 The Clash의 노래 중에 ‘Lost in the supermarket’이라는 곡이 있는데, 마트나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정말이지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든다.
자신이 뭘 먹는지도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편리라는 이름의 산업 시스템에 볼모가 되어 갈수록 시스템에 의존적이 되어가고 실체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삶에서 해방될 길은 정녕 없는 걸까.
가장 좋은 건 자급자족이리라,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화장실에서 돌아와 여전히 잠 못 들어 하며 S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떻게? 에 생각이 이르니 막막해진다. 모든 게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에 줄곧 의탁하며 살아가다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저 역사책 속에서나 들어봤던 자급자족이라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과연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그렇다면 차선책은 믿음을 주는 생산자들과의 직거래일 텐데, 그건 몹시도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 알람 소리에 힘겹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S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다시금 설사를 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언제나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편리한 사고방식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결단을 내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볼 것인가…….
S는 여전히 속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