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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12. 2022

마음이 진창 속을 헤맬 때

  오래도록 마음이 진창 속을 헤맬 때가 있다.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장맛비처럼 우울의 비가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내린다. 어떻게도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더 깊숙이 빠져들고 만다. 


  그럴 땐 우선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초래한 결과일 뿐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거부한다고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재는 결국 과거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누구 때문에, 세상 때문에 라고 탓해서는 어떤 해결의 실마리도 얻지 못한다. 우울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그래서이다. 타인이나 세상을 욕하거나 스스로를 꾸짖어서이다. 


  예를 들어 성격 차이로 다투고 다투다가 연인과 헤어졌을 경우에 처음에는 공격의 화살이 상대방에게로 향한다. 왜 그렇게 생겨먹었을까, 어쩌면 그다지도 이기적일까, 하필 그런 년(놈)을 만나가지고…….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외로움이 짙어지면 이제 공격의 화살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난 왜 내 입장만 내세웠을까,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을까, 나는 왜 이다지도 못났을까…….


  두 사람이 만나고 사귀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상황과 마음이 공명(共鳴)을 일으켜서이다. 인연이란 아무렇게나 성립되는 게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인연이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마음으론 되지 않고, 두 사람의 마음에 교집합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그러한 소중한 인연이 끊어진 것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해서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말하듯,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고,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뒤따른다. 인연이 끊어진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책임한 말과 행동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고 본다. 그 다음으로는, 서로가 더 이상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으리라.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다만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이유를 알더라도 외면해 버리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시간 속에 놓여 있다는 냉철한 자기분석이 요구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 없이 살고 있다면 스스로 변화를 원하지 않았거나 하지 않아서이다. 그런 상태가 흡족하다면야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흡족하지 않다면, 몹시 불만족스럽다면 현재의 상태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변화의 노력이 없다면 사람이란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기적으로 큰 변화를 꿈꾼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실행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스스로에게 실망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어 더 우울해지거나 극단적인 선택마저 감행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은 해결방안이라기보다는 욕심에 불과하고 요행을 바라는 심리에 맞닿아 있다.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꾸준히 변화해 나아가야 한다. 니체가 말했듯, 높은 감각의 강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높은 인간을 만든다.


  좀 더 괜찮은 연인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향해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되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함으로 인해 관계에 금이 가거나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S는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아, 그러나 생각은 쉽고 실천은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매번 성찰하고 또 성찰하는 것만이 S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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