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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Sep 21. 2022

속 터지는 이야기 #1

1


  우성은 오늘도 속이 터진다.


  아, 정말 미치겠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방금 전에 말했는데, 또 그러고 있냐?”


  쭉 뻗고 있는 다리를 우성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재원이 다리를 책상 아래로 슬그머니 집어넣는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말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이유라도 좀 알자.”


  그러나 재원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다. 


  “나 열 받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재원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그럼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우성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냥…… 습관이 돼서…….”


  재원이 고개를 숙인 채 우물거린다.


  “아니…… 습관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그렇게 너 편한 대로 살 건데? 응?” 우성은 손에 들고 있던 교재를 교탁 위에 올려놓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4년째다, 4년째. 수업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소리를 내가 해야겠냐? 잘못된 습관이라고 생각하면 고쳐야 할 거 아니냐. 안 그래?”


  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나처럼. 그러면 뭐 하나. 몇 분 지나면 다시 다리를 쭉 뻗고 있을 게 뻔하다. 후, 하고 우성은 한숨을 내쉰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잖아. 매번 수업 시간에 15분, 20분씩 늦게 오잖아. 5분만 늦어도 말을 안 하겠다. 어떻게 꼬박꼬박 15분, 20분씩 늦게 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너 사는 아파트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잖아. 수업이 일곱 시에 있으면 집에서 여섯 시 오십분에 출발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재원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성은 가슴이 답답하다. 더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울화가 터져 견딜 수가 없다.


  “늦게 올 뿐만 아니라 준비물도 제대로 안 가져오고……. 오늘도 안 가져와서 복사를 해줘야 했잖아. 아니, 수업 시간이 다가오면 준비물을 가방에 넣고 1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하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힘든 거야?”


  재원이 다시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성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는데,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도대체 뭐 하고 지내냐? 안 봐도 뻔해. 맨날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하고 있겠지. 그러니까 가르쳤던 내용 물어보면 또 모르고 또 모르고……. 그러면 매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고……. 아,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지겨워. 내가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해야 하냐?”


  재원이 볼펜으로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다. 


  “얌마!”


  우성이 소리 지르자 재원이 볼펜을 멈춘다.


  “또 낙서하고 있네! 어이구, 속 터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냐. 지금이야 부모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지만 2년이 지나면 너도 성인이다, 성인. 그때도 지금처럼 살 거야? 나중에 직장에 들어가서도 15분, 20분씩 늦게 출근할 거야? 그러면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안 돼서 잘릴 게 뻔하잖아. 아니, 직장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 면접을 보는데, 뭐 물어보면 똑바로 대답 안 하고 우물거리기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나 하면 어느 누가 널 뽑아주겠냐. 그 전에 군대 생활은 어떻게 할 건지…… 걱정이다, 걱정이야.”


  잔소리를 멈추고 다시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우성은 교재를 집어든다. 칠판에 몇 글자를 쓰고 나서 뒤돌아 선 우성은 책상 아래로 쭉 뻗어 있는 재원의 다리를 목격한다. 더 이상 너랑은 과외 안 해! 소리를 내지르려다 목으로 삼키고 만다. 한 푼이 아쉬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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