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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Sep 24. 2022

속 터지는 이야기 #2

2


  미애는 오늘도 속이 터진다.


  오랜만에 반찬을 갖다 주러 들렀더니 남편이라는 작자는 또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서 소주에 통닭을 먹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청소를 안 했는지 방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아, 정말 싫다 싫어. 이런 남자를 뭐가 좋다고 만났을까……. 스물아홉 살에 처음 만났을 땐 이 남자가 멋져 보였었다. 큰 학원에서 강사를 하니 수입도 괜찮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 강사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야망도 근사해 보였고, 게다가 자신이 쓴 시를 종종 들려주기에 실속과 낭만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남자가 열 살 연상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때만 해도 충분히 동안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서둘러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배당한 게 잘못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아홉이건 서른이건 서른하나건 큰 차이가 없는 건데……. 마흔 되기 전까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며 간을 보았어도 충분했는데…….


  “도대체 방 꼴이 이게 뭐야!”


  아무 말 하지 말고 반찬만 건네주고 얼른 와야지, 마음먹었지만 막상 사는 꼴을 맞닥뜨리고 보니 아무 말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와서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우성이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나! 나는 사람도 아니야? 나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야?”


  미애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만다. 어이구, 속 터져, 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우성은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멀거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품에 안긴 똘똘이가 끙끙 소리를 낸다. 통닭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 괴롭다는 소리다. 미애는 쉿! 하고 주의를 준다. 똘똘이는 금세 조용해진다. 주의 한 번이면 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강아지만도 못한 인간, 소리를 내뱉으려다가 속으로 삼키고 만다.


  “1, 2년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데? 응?”


  “알았어. 치우고 살게.”


  우성이 머쓱해하며 우물거린다. 미애는 후, 하고 숨을 내쉰다.


  “그것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이제 그만 이 생활 정리하고 반찬가게에 와서 배달 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성은 대답 없이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빨리 미애가 사라지고, ‘일시정지’해 놓았던 화면을 재생시켜 영화를 보고 싶은 모양이다. 미애는, 아이구, 한심한 인간아, 소리를 속으로 삭인다.


  “아니, 이 생활하면서 반찬가게 일 병행할 수 있잖아. 수업이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있잖아. 도대체…….”


  똑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며 미애는 말을 멈춘다. 


  결혼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우성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자신만의 학원을 차렸다. 강의실 네 개에 원장실과 상담실이 딸린 제법 큰 규모였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으로 키우겠다는 둥 큰소리를 떵떵 치더니, 점차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만 푹푹 내쉬는 날들이 많아졌고, 5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매일 술 마시는 습관이 붙었고, 심심하면 한 번씩 자동차를 몰고 나가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 작가로 거듭나겠다나 뭐라나. 그런 채로 2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결과물도 없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나 한량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밖엔 와 닿지 않았다. 당장 이혼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딸 하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어서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고 말했다. 꼴 보기가 싫었다. 


  그때부터 우성은 투룸을 얻어, 거실에서는 과외를 하고 방에서는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6년째다. 혼자서 근근이 먹고사는 걸로 보아 대여섯 명 데리고 과외를 하고 있는 듯하다. 가끔씩 하늘이를 만나 공부를 봐주고 밥을 사주는 게 유일한 아빠 노릇이다. 남편 노릇은…… 완전 꽝이다. 생활비를 보태주기는커녕 생활비를 보태주어야 할 판이다. 딸에게 들어가는 돈은 모두 친정엄마와 함께 반찬가게를 하면서 충당하고 있다. 지금이야 예민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꾹 참고 있지만, 하늘이가 스무 살이 되는 순간 바로 끝장을 낼 생각이다. 4년. 아직도 4년을 더 견뎌야 한다. 


  똘똘이가 다시 끄응끄응 신음 소리를 낸다. 여기 있기가 고통스러우니 빨리 집으로 가자는 소리다. 미애는 알았다는 표시로 똘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매일 사 먹는 술, 안주, 거기에 담배까지…… 그것만 아껴도 얼마야…… 50만원은 족히 넘겠네. 돈벌이를 제대로 못하면 절약정신이라도 있어야지. 도대체 무슨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소비를 해줘야 그걸 만든 사람들도 먹고살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미애는 꽥 소리를 내지르고 만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당신 걱정이나 해, 당신!”


  더 쏘아붙이고 싶지만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말자,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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