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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Nov 17. 2020

사자와 치킨 #1

  도시에 사자가 출몰했다.


  그야말로 출몰이었다.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종적 없이 사라지곤 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거리 곳곳에 경찰이 배치되었다. 군인들까지 출동하여 수색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오리무중이었다. 동쪽에서 신고가 접수되어 우르르 몰려가 있으면 며칠 후에는 서쪽에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온갖 괴담이 퍼졌다. 홍길동의 재림이 틀림없다는 둥, 사자가 변신술에 능해서 고양이로 변하니 고양이가 보이면 가까이 가지 말라는 둥, 재빠른 걸로 보건대 동물원을 탈출한 건 사자가 아니라 원숭이라는 둥, 사육사가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은 게 아니라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홧김에 사자를 풀어주었을 거라는 둥…….


  사람들은 되도록 외출을 삼갔다.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고,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할 경우에는 야구 방망이나 몽둥이를 손에 쥐고 다녔다. 그걸로 사자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듯이. 다행히 인명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자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SNS에 유포되었지만, 대개가 먼 거리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가끔씩은 개나 고양이를 찍고서 사자라고 우기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찍은 사자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사자가 출몰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서였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그 주인공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남학생은 사자와 맞닥뜨렸고, 냅다 도망쳤다. 사자가 뒤쫓아 왔다. 남학생은 옷가게로 들어갔고, 여주인에게 사정을 말했다. 주인이 출입문을 잠갔다. 뒤쫓아 오던 사자는 두꺼운 유리문과 충돌했다. 쿵, 건물이 흔들렸다. 옷가게의 주인은 꺅, 소리를 내지르며 카운터 아래로 몸을 숨겼지만 남학생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자만 찍기도 했고, 자신의 모습이 함께 나오도록 찍기도 했다. 사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 출입문 주변을 맴돌며 입맛만 다셨다. 남학생은 혀를 내밀고 메롱, 하며 사자를 놀렸다. “어디 한 번 덤벼 보시지.” 하며 권투 자세를 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옷 진열대에서 옷걸이를 하나 발견하곤 그것으로 활 쏘는 시늉을 해 보였다. “피융.” 소리까지 내가며. 놀라운 일은 그때 벌어졌다. 입맛만 다시고 있던 사자가 움찔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오호, 남학생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재미로 한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지 않았는가. “피융, 피융, 피융.” 신이 난 남학생은 연거푸 활 쏘는 시늉을 했고, 사자는 계속 뒷걸음쳤다. 용기를 얻은 남학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뭐 하는 거야? 나가면 안 돼!” 주인이 소리쳤으나 남학생은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주인은 남학생이 들어오면 언제든 문을 닫을 태세로 출입문 옆에 바짝 붙어 섰다. 


  밖으로 나간 남학생은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뒷걸음치던 사자는 몸을 홱 돌리더니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시동도 끄지 않고 도로 가에 정차한 채 구경하며 사진과 동영상 찍기에 여념이 없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남학생을 향해 박수를 쳐댔다.


  남학생은 일약 영웅이 되었다.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고, 각종 언론에 지겹도록 나와 상황을 재현해 보였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다. 사자가 왜 활 쏘는 시늉에 겁을 먹었을까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동물원에 잡혀 오기 전 마취총에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서일 거라는 어느 생물학자의 의견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활 쏘는 시늉보다는 출입문이 무서워서일 거라고 말한 철학과 교수도 있었다. 출입문에 막 부딪쳤을 때는 얼떨떨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에 혹이 부풀어 오르고 아픔이 온몸으로 번져나가자 출입문에서 멀어지려고 뒷걸음쳤다는 것이었다. 두꺼운 유리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적으로 느껴졌으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하는 이치와 맞닿아 있노라고 설파했다. 그 교수의 말에는 많은 악성 댓글들이 따라붙었다. ‘저게 도대체 말이야 막걸리야? 저 교수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교수야, 네가 직접 시연해 보여줘라, 출입문을 향해 돌진하면 정말 출입문이 무서워지는지.’, ‘ㅋㅋ 똥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이치와 같군 그래’…….


  이제 활이 많은 사람들의 소지품이 되었다. 마트와 편의점, 문구점에서까지 다양한 종류의 활을 팔았다. 각 학교에서는 활 쏘는 시늉을 연습하는 시간을 별도로 편성하였다. 사자가 나타나는 순간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신속하게 손에 쥐고 피융, 피융, 소리를 내는 훈련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자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사자가 출몰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인명 사고는 보고되지 않아서였다. 군인들은 부대로 복귀했고, 경찰들도 본래의 업무로 돌아갔다. 마취총을 쏴서 생포한 다음 동물원으로 돌려보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십여 명의 경찰들만 남았다. 사자가 자주 출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감이나 서운함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심지어는 사자를 찾아 거리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활에 화살까지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그물을 가지고 다니며 사자를 생포할 계획인 사람도 있었다.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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