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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Sep 28. 2022

속 터지는 이야기 #3

3


  고양이는 오늘도 속이 터진다.


  미애가 강아지를 품에 안은 채 원룸건물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똘똘아, 많이 힘들었지? 나도 저 인간 때문에 힘들어 미치겠다. 집에 가서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거 참 너무하네.”


  주차 공간 옆 화단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미애를 향해 말을 건넨다. 미애가 자동차로 향하던 발길을 멈춘다.


  “네가 나한테 말한 거니?”


  “알면서 뭘 묻고 그래. 차별이 너무 심하잖아. 강아지한테는 이름도 붙여주고 품에 안고 다니면서 나, 고양이한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이야.”


  “그게 불만이니? 그럼 너도 강아지처럼 행동하면 되잖아.”


  “강아지처럼?”


  “강아지는 말도 잘 듣지, 애교도 잘 부리지, 주인의 감정도 느낄 줄 알지……. 넌 반대잖아. 식성 까다롭지, 성격 까다롭지, 뭐든 네 뜻대로만 하려고 하잖아.”


  “고양이스러운 강아지도 있고, 강아지스러운 고양이도 있지 않을까?”


  “네가 그럼 강아지스럽다는 얘기야?”


  “내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괜한 말을 꺼냈다 싶어지자 고양이가 앞발로 볼을 긁적거린다. 무안할 때 하는 행동이다.


  “본전도 못 찾을 소리를 왜 하니?”


  “나보고 사람 비위나 맞춰주며 살라고? 흥, 그렇게는 못 살지.”


  고양이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핏대를 올린다.


  “거봐, 그러면서 뭘 바라는 거야. 넌 그냥 고양이스럽게 살면 되는 거야. 똘똘이 부러워하지 말고. 그나저나 너 왜 나한테 반말하니?”


  “너도 나한테 반말하잖아. 설마 내가 존댓말 했으면 너도 나한테 존댓말 했을까?”


  “어휴, 말을 말자, 말을. 넌 어쩜 그렇게 남편이라는 작자랑 비슷하냐. 주제 파악도 못하면서 자존심만 강해가지고…….”


  그때 똘똘이가 왈왈, 하고 짖는다. 저런 놈 상대하지 말고 빨리 가자는 소리다. 미애는 똘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동차에 올라탄다.


  자동차가 사라지고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우성이 나와 담배를 꺼내 문다. 한 모금 들이마신 뒤 후우, 하고 깊은 숨을 내쉰다. 


  “세상 사는 게 쉽지 않지?”


  고양이가 우성에게 말을 붙인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네.”


  우성이 씁쓸한 어조로 말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이제 그런 건 힘들지. 문명스럽게 살아가는 수밖엔 없지. 자유로운 대신 불안정한 세계를 반납한 대가를 감내해야 돼. 나라고 뭐 좋아서 인간들이 버린 음식물쓰레기나 뒤적거리며 사는 줄 알아?”


  “그러니까…… 생각 같아서는 얽매임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살고 싶은데…….”


  고양이는 다시 속이 터진다.


  “아, 인간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니까! 그리고 그런 세상이 있다고 한들, 실제로 그렇게 살면 뭐 좋을 줄 알아? 고달프고 외롭고 위험하고……. 생각과 실제는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무 큰 기대 같은 거 갖지 말고 소소한 것에 만족해하며 살아. 어차피 지나온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는 넌 소소한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


  시무룩해 있던 우성이 반격을 감행한다. 그러자 고양이가 앞발로 볼을 긁적거린다.


  “실은…… 나도 너처럼 생각과 행동의 괴리 속에서 살고 있어. 가끔은 강아지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기도 해. 하지만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건 딱 질색이야.”


  창피함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고양이가 슬그머니 건물 뒤편으로 걸어간다. 그러면서, 다시는 강아지를 부러워하지 말아야지, 고양이로서의 품위를 잃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을 곱씹는다. 그런데, 며칠 전에도 몇 달 전에도 똑같은 다짐을 했던 것에 생각이 미치자 고양이는 속이 쓰리다. 아, 인간의 동네에서 살면 역시 인간스러워지는 게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죽음을 불사하고 야생의 세계로 떠나볼까? 그러나 그건 너무도 아득하기만 하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진정 고양이다운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분리수거장에 가서 인간들이 버린 술병에서 흘러내린 술이나 좀 할짝거려야겠다. 맨정신으론 살 수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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