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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Nov 18. 2020

사자와 치킨 #2

  두 명의 남자가 도시 외곽의 별장 앞에 마련된 파라솔 아래에서 치킨을 안주로 하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 명은 은행원, 다른 한 명은 별장의 주인인 사업가였다. 휴일을 맞아 골프를 치고 와서 목을 축이고 있는 참이었다. 그때 사자가 선선한 바람에 갈기를 휘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어스름 녘이어서 사자의 모습은 멋진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었다.


  “엇, 저, 저건…….”


  은행원이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업가가 고개를 뒤로 돌려 바라보았다.


  “아하, 사자로구만.”


  두려워할 게 뭐 있느냐는 듯 사업가가 말했다. 애완견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의 표정과 말투였다. 


  “아참, 그렇지.”


  그제서야 은행원은 히죽히죽 웃음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빈 의자에 놓아두었던 활을 손에 들었다. 


  “이것만 있으면 되는 거지?”


  “에이, 그것도 필요 없어. 쟤는 그냥 겁쟁이야. 동물원에서 사육사에게 오래도록 길들여져서 인간이라면 그저 뭐 먹을 것이나 주는 존재로 여긴단 말이야. 자, 보라구.”


  사업가가 6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다가온 사자를 향해 치킨 한 조각을 집어서 던져주었다. 


  “짜식, 치킨 냄새 맡고 온 거지? 너도 참 큰일이다. 생닭보다 치킨을 더 좋아하는 걸로 봤을 때 야생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내심 호기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사업가는 골프 가방에서 골프채를 하나 꺼내어 손에 쥐었다. 그걸 휘두르면 사자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기라도 하리라는 듯이.


  사자는 멈춰선 채 치킨 한 조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쳐들고 은행원과 사업가를 쳐다보았다. 


  “치킨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은행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이 너무 적어서 그런가?”


  그러면서 사업가가 치킨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골라 집은 다음 또 던졌다. 


  “옜다, 하나 더 먹어라.”


  그때였다. 사자가 크아앙, 울부짖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업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앗, 하며 사업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골프채를 들어 올려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사자에게 목을 물린 뒤였다. 골프채는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행원은 놀라자빠졌다가 뒷걸음치며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시늉을 했다. 덜덜덜 떨며 “피융, 피융.” 소리도 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골프채로 사자를 공격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도 목숨을 내놓는 결과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서자 자동차에 올라타고 서둘러 시동을 켰다. 도망을 치며, 이럴 땐 112를 눌러야 하나 119를 눌러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112를 눌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자는 이미 종적 없이 사라진 뒤였다. 사업가의 처참한 형체만이 빨갛게 조명을 받고 있었다. 


  사자가 왜 치킨에 거부 반응을 보였을까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어떤 시인의 의견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사자가 동물원을 탈출한 것은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만 먹는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해서일 텐데, 사업가가 치킨을 던져주자 다시 갇히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였으리라는 것이었다. 어떤 교수는 다른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일전에 곶감 얘기를 했던 그 철학과 교수였다. 치킨이어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고기가 밀가루 반죽에 둘러싸여 있으니 사자로서는 고기라는 인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백수의 제왕인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고 밀가루 덩어리를 던져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느껴졌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약 백숙을 먹고 있었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번에도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도대체 왜 저 교수를 자꾸 출연시키는지 모르겠네. 방송국에서 돈을 많이 받고 출연시켜주는 게 분명해.’, ‘저 교수 몸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서 튀겨버리고 싶다.’, ‘ㅎㅎ 자신의 식성을 사자한테 갖다붙이고 있구만. 치킨 얘기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백숙 얘기 하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것 좀 보라지.’…….


  인명 사고가 발생하자 다시 경찰들이 시내 곳곳에 배치되었고, 군인들은 도시 외곽을 수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활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다. 활 쏘는 시늉 따위로는 사자를 위협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태의 초기처럼 두려워하며 지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자는 이제 도시에는 출몰하지 않았고 도시 외곽의 들이나 산에서만 가끔씩 목격되었던 것이다.


  타격을 받은 것은 치킨집들이었다. ‘사업가가 살해당한 것은 치킨 때문이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이다. 치킨협회 대표가 나와서 ‘사업가가 살해당한 것과 치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치킨 조각을 함부로 던진 것이 잘못이었다.’고 호소를 해보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장이 나서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는 치킨을 먹는 모습을 연출해 보였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저도 치킨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시장이 치킨 한 조각을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보십시오, 치킨을 먹고 있다고 해서 사자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허.”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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