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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Nov 19. 2020

사자와 치킨 #3

  시장까지 나서서 힘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치킨을 멀리하고 백숙을 가까이했다. 많은 치킨집들이 백숙집으로 전환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 사람은 두 번이나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그 철학과 교수였다. 논리야 어찌 되었든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각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세상이 합리적으로 돌아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교수는 말하곤 했다. “합리를 가장한 야만이 역사를 지배해 왔습니다. 치킨이야말로 합리를 가장한 야만의 표본입니다. 돈가스와 쌍벽을 이루죠. 본질을 외피로 가리고서는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 고상한 종족이다, 내세우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죠. 차라리 솔직하게, 난 야만인이야, 라는 인식을 지니고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저는 열다섯 살 때 그런 이치를 깨닫고 나서부터 치킨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백숙만 먹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악성 댓글이 달리지 않았고, 역시 철학자는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며 찬양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급기야 <백숙 마니아>라는 이름의 팬카페까지 생겨났다. ‘오늘부터 당장 치킨을 끊고 백숙만 먹겠습니다’에 ‘예’라고 답해야 가입이 되는 조건이었다. 카페에는 백숙 맛집, 직접 요리한 백숙, 백숙에 얽힌 추억담 등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왔다. 회원들은 주말이면 백숙 십여 마리를 양철통에 들고 ‘사자에게 백숙을!’이라고 새긴 플래카드를 앞세운 채 도시 외곽에 있는 산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다행히.


  사자가 동물원을 탈출한 것은 갇힌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해서라고 말했던 시인은 이러한 현상을 개탄스럽게 지켜보다가, 백숙이냐 치킨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자를 생포해서 얼른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동물을 인간의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키는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고 언론에 여러 번 기고를 했지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자는 도시 외곽의 야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나서 영화계에 뛰어들어 연출부에서 박봉의 세월을 보내다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꿈꾸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주목도 받지 못하고 흥행에도 참패해 빚만 잔뜩 짊어지게 된 남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며 힘겨운 나날을 살아가던 남자는 ‘사자 동물원 탈출 사건’을 지켜보다가 인생 역전을 꿈꾸었다. 사자를 잡으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그러면 자신이 영화감독이라는 것이 부각될 것이고, 그러면 무명의 신인감독 작품이 새롭게 조명될 것이고, 흥행에 참패했던 작품의 역주행이 시작되리라……. 남자는 엽총을 하나 장만했다. 군인들이 산 아래에서만 빙빙 맴돌고 있을 무렵 남자는 매일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헤집고 다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사자가 혹시 낙엽 속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막대기로 쿡쿡 쑤시며 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무렵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사자는 몹시도 외로워 보였다. 동물원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었지만, 원하는 종류의 자유가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남자는 사자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게 여겨졌다. 꿈꾸는 삶에 놓여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꿈꾸던 삶과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남자는 사자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모른 체 지나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그러나 영웅이 되고 싶은 심리가 측은지심을 눌렀다. 한 발. 크아앙. 사자가 몸을 뒤틀었다. 두 발. 크으응. 한결 약해진 소리를 내며 사자가 앞으로 다가섰다. 도망칠 생각도, 그렇다고 맞공격을 감행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기다려왔던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려는 자세였다. 세 발, 네 발, 다섯 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사자가 비틀거렸다. 여섯 발. 뒷다리가 꺾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하늘은 소나무 가지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리라. 이곳은 아프리카의 초원이 아닌 것이다. 일곱 발. 풀썩, 몸이 옆으로 꺾였다.      


  남자는 영웅이 되기는커녕이었다. 신고를 해서 생포하게 해야 하는데 쏘아죽이다니, 잔인무도한 놈이라는 원성만 들었다.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여러분, 이제 안심하시고 길거리든 산이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고 선포했다. 방송에서 떠들썩한 토론 같은 것도 열리지 않았다. <백숙 마니아> 카페는 활동이 흐지부지되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은 사자 탈출 사건 이전의 삶으로 회귀했다. 다시 치킨을 좋아하게 되었고, 백숙은 외면 받았다.


  철학과 교수는 화려하게 주목받던 시간이 막을 내리고 무료한 시간들이 이어지자 울분에 휩싸였다. 치킨 먹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부풀어 올랐고, 어떻게든 다시 백숙의 시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백숙 요리를 개발해서 ‘백숙 전문점’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정년퇴직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시인은 사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를 한 편 썼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듯

  으르렁거려야 사자다

  우리에 갇혀 깃털까지 말끔히 뽑힌 채 내던져진

  생닭을 비참하게 우물거리는 그들을 보며

  인간은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인간이 지켜보는 건 사자가 아니다

  무시무시한 자유를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고

  말랑말랑한 속박의 달콤함에 푹 빠져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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