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쯤이었다.
오전 열한 시. 한창 바쁜 시간이었다. 식당 영업은 열한 시 삼십 분부터 시작이다.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 놓아야 한다. 아내와 나는 반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가게 문이 열리더니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아내가 주방에서 홀로 향했다. 그러더니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때가 어느 땐데 저러고 있나. 한심하기는……. 영업시간은 열한 시 삼십 분부터입니다. 그 시간에 맞춰서 오시든가, 아니면 앉아서 기다리세요. 간단히 그렇게 말하고 오면 될 것을.
그러나 아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전히 얘기 중이었다, 웃음을 주고받으며. 그것이 아내의 장점이다. 누구나 가리지 않고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내의 단점이기도 하다. 맺고 끊음이 분명치 못하다.
“뭐하고 있어? 바빠 죽겠는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내가 힐끔 나를 보더니, ‘알았어, 곧 들어갈게’ 하는 눈짓을 해보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남 속도 모르고 무사태평한 얼굴이라니……. 연애 기간에는 그토록 천사 같던 모습이, 결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복창 터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간다.
아내는 선반에 진열해 놓았던 마른 천일홍을 한 줌 집어 들더니 할머니에게 건네고 있었다.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고마움을 표하곤 가게 밖으로 향했다.
“뭐라시는데?”
주방으로 다시 들어서는 아내를 향해 나는 말을 쏘았다.
“응, 지나가다가 밖에 피어 있는 천일홍 보시곤 너무 곱다고, 당신도 키우고 싶다고…….”
아내가 콩나물을 무치며 말했다.
“별일도 아닌데 뭘 그리 시간을 끌었어?”
나는 오이를 썰며 불퉁거렸다.
“그래서, 시기가 지났다고, 봄에 심어야 여름에 꽃을 피운다고 그랬더니, 지금이라도 심고 싶다고, 어디 가야 씨앗을 구할 수 있냐고 물으셔서, 시장까지 가려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 말린 꽃 드린 거야.”
되새기듯 하나하나 떠올리며 차분하게 말을 잇는 아내의 태도에 나는 더욱 부아가 났다.
“음식 먹으러 온 손님도 아닌데 꼭 그렇게 태평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어야겠어, 이 바쁜 시간에?”
콩나물을 무치고 있던 아내의 손이 멈추었다.
“그게 지금 화낼 일이야?”
야채샐러드를 만들고 있던 내 손도 멈추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럼 그게 화낼 일이 아니면 뭐가 화낼 일인데?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쁜 시간에 손님도 아닌 사람에게 그렇게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어야겠어? 똥오줌도 구분 못해?”
아, 이런…….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말은 입 밖으로 나가버린 상황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감정이 앞서게 되면 매번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말투가 새어나가고 만다.
“손님은 중요하고 손님 아닌 사람은 안 중요해?” 아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처음부터 손님하고 손님 아닌 사람이 구분 돼 있어? 손님 아닌 사람하고 얘기 좀 했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나?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
아내도 감정이 격해지자 나를 공격한다. 생각건대 아내의 말이 모두 맞다. 손님과 손님 아닌 사람의 구분이 어디 있겠으며, 손님 아닌 사람과 얘기 좀 나눈다고 무슨 큰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면 지고 싶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이 고개를 치민다.
“이 사람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샐러드 담은 그릇을 들어 올려 내던지려는 몸짓을 취하다가 내려놓는다. “그럼 나도 준비 안 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있어볼까? 손님이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말까? 그럼 우린 뭐 먹고 사는데!”
한심하다, 한심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사흘에 한 번꼴로 오는 단골손님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열한 시 삼십 분을 넘어섰다.
“어서 오세요.” 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결혼한 지 12년이 지났다. 간헐적으로 이런 위기의 순간이 출물하곤 한다. 별일 아닌 것에서 시작되어,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 맞닿을 수 없는 팽팽한 상태에 맞닥뜨리곤 한다. 1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내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그때마다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잠시 저 한쪽으로 밀쳐진다. 대개 식당에서는 손님들의 출현에 의해서, 집에서는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렇다. 그러나 한쪽으로 밀쳐두었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어느 순간 불시에 붕 떠올라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들곤 한다. 언젠가는 펑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 보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하리라. 그러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식당에서는 음식 준비에 손님맞이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집에 가면 아이를 돌보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아침을 먹고 나서는 밭도 가꾸어야 한다. 상추며 고추, 오이, 호박, 감자……. 아는 분이 빌려준,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공간이다. 당분간 이용하지 않는 곳이니 땅이 팔릴 때까지 마음껏 쓰라고 했다.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 덕분에 음식 재료비도 절감하고, 손님들에게 ‘직접 기른 채소로 반찬을 하는 식당’이라는 좋은 느낌도 줄 수 있다. 문제의 천일홍만 해도 작년부터 밭에 심어오고 있다.
작년 5월이었다. 채소 씨앗을 사러 재래시장에 갔을 때 아내가 천일홍 씨앗을 주워든 것이었다.
“그건 뭐 하러?”
채소 가꾸기도 정신없는 판에 꽃은 뭐 하러 키울 생각이냐는 뜻으로 내가 묻자,
“예쁘잖아.”
그것이 아내의 대답이었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씨앗을 사는 데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밭이 채소로 꽉 들어차 빈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였다.
씨앗을 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하자, 아내가 천일홍을 식당 앞에 심자는 것이었다.
“왜?”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고,
“예쁘잖아.” 아내가 대답했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접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식당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게 아닌가.
그리하여 식당 앞에 나무 조각들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흙을 채운 다음 천일홍을 옮겨다 심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손님들 중에 걸음을 멈추고 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천일홍이 딱히 장사에 큰 도움이 된다는 낌새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여름이 지나고 꽃의 싱싱한 기운이 약해지자 아내는 꽃대를 꺾어 집과 식당의 곳곳에 진열해 놓았다. 그러곤 관심을 보이거나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한 줌씩 나눠주곤 했다. 그때마다 얘기를 주고받는 손님과 아내 사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내 좋은 기분에는, 꽃송이를 받아든 손님들은 우리 식당에 좋은 느낌을 지니고 계속해서 고객이 되어 주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