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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Oct 12. 2021

언제나 그렇듯이 #2

  7년 전,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니 너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당시 유부녀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중소기업의 사장이라는 유부녀의 남편이 알게 되었고, 조폭을 동원하여 너를 망가뜨려 놓은 것이었다. 6개월쯤 지나 퇴원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제 한곳에 붙박여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네가 훌쩍거리며 고민을 얘기했다. 요리를 잘 하니까 식당 같은 걸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나는 의견을 말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너는 허름한 상가의 작은 공간을 임대하여 김치찌개 전문점을 열었다.


  “형님의 삶이 부러워요. 저도 형님처럼 살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부럽기는……. 난 365일 거의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보이지 않는 사슬에 매인 것처럼. 난 네가 부러워. 넌 그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잖아. 나도 너처럼 살고 싶은데, 그게 되지를 않아. 생각만으로 그칠 뿐이지.”


  “그러고 보면 사람은 각기 자기만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


  “형님하고 처음 만났을 때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20년 전에 너와 나는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대학을 졸업한 직후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활비가 떨어질 때마다 인력사무소에 나가 막노동을 했었다. 어느 날 배정받은 일자리에서 너를 만났다.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삼촌을 따라다녔고, 차츰 삼촌과 관계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철근공, 목공, 용접공, 미장공, 설비공, 비계공…… 건설과 관계된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너의 조수 역할을 했다. 내가 두 살 위였지만, 건설 현장에서 너에 비하면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첫날부터 너는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듣기에 민망했지만 점차 적응되었다. 내세울 것 없는 대학을 나오고 졸업하고 나서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이건만, 대학을 나오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나를 보며 너는 내가 ‘많이 아는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몸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너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일을 마치고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너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지금은 비록 잡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돈을 모아서 건축사무소를 차릴 거라고, 주택부터 시작해서 원룸이나 상가 건물로, 나중에는 아파트 단지를 맡아서 일을 할 것이라고, 통일이 되면 북쪽 땅은 또 얼마나 큰 기회의 땅이 될 것인지 마음이 설렌다고……. 너의 원대한 꿈과 포부 앞에서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에 사활을 걸며 살고 있는 내가 몹시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돈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때마다 나는 너의 조수가 되었다. ‘형님’ 소리를 듣는 조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고 나서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 응급실이었다. 일 하다가 4층 높이에서 떨어져 다리뼈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너는 말했다. 형님한테 이런 모습 보여 죄송해요, 하고 너는 훌쩍이며 눈물을 훔쳤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하고 나는 말했지만 충격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주어지건 능수능란했던 네가 추락 사고를 당하다니……. 


  “여행 다녀와서 말이야, 글을 써 보는 건 어떨까?”


  “글이라뇨……? 저는 뭘 써본 적이 없는데…….”


  “누군 뭐 태어나면서부터 글을 쓰나? 뭐든 마찬가지지만 자꾸 하다 보면 늘겠지. 나와 다르게 넌 이것저것 경험한 게 많잖아. 여자도 많이 만나봤고 말이야. 에세이든 소설이든 한 번 써보는 거야.”


  너의 얼굴에서 침울함이 걷히고 맑은 기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근데,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오토바이 타고 배달 일을 하는 건 어떨까? 요즘 비대면 세상이라서 사람들이 음식 배달을 많이 하잖아.”


  그러자 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배달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글을 쓰는 생활 속으로 이미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좋아요. 한 번 해보죠 뭐.”


  네가 환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고, 나도 술잔을 들어 너의 잔에 부딪쳤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면서 생각만 많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너는 다시금 희망에 부푼 채로 활짝 웃어보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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