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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Oct 11. 2021

언제나 그렇듯이 #1

  언제나 그렇듯이 너는 또 술을 마시며 훌쩍훌쩍 울었다. 사내새끼가 왜 울고 그래, 같은 말을 나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이 풍부한 너의 그런 모습이 나는 부러웠다. 난 울어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2년 전, 지금의 이 장소에서 너와 나는 술을 마셨고, 그때 너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학가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다고, 이전의 세입자가 몸이 아파서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권리금도 받지 않는 조건이라고, 월세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지금보다 세 배 네 배로 돈을 벌 것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5년 정도만 고생하면 아파트 한 채 값은 거뜬히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너는 꿈에 부푼 채 웃고 또 웃었다. 


  처음엔 정말 너의 말대로 될 것 같았다. 밥을 먹으러 너의 식당에 갈 때마다 손님이 바글바글했고, 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리하여 네 얼굴도 못 보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대학들이 수업을 동영상으로 대체하면서부터 대학가는 한산해졌고, 너의 식당 또한 여지없이 타격을 받았다. 에이, 금방 끝나겠죠 뭐, 하면서 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곤 했지만 그 웃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두 달도 아니고 세 달도 아니고 1년을 넘어서자 불안과 두려움을 지나 절박함이나 절망감 같은 감정과 맞닥뜨려야 되었다. 월세를 낼 수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조금 더 지나서는 사채까지 끌어다 쓰게 되었다. 계약 기간 2년이 되었을 때 너는 식당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권리금 받을 생각 같은 건 할 수도 없었고,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빚부터 갚아야 했다.


  “형님, 왜 저는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요?”


  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고,


  “지금은 다들 힘든 상황이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그 상황에서 누구나 했을 법한 위로의 말을 나는 건네었다.


  “앞으로 뭘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눈물 섞인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너는 말했다.


  “이럴 때 한 곳에 붙박여 있으면 안 좋은 생각만 드니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보는 게 어떨까 싶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조언을 하며 나도 소주잔을 꺾었다. 


  “여행이라…… 그러고 보니 여행 다녀본 지도 참 오래됐네요.” 너는 눈물 젖은 미소를 머금었다. “한때는 여행이 삶이 전부였는데 말이죠.”


  그랬다. 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너의 삶은 여행 그 자체였다. 15년 전, 지금껏 육체노동만 해왔는데 이제 육체노동을 하기가 힘들게 됐다며 네가 고민을 토로했을 때 내가 너에게 추천한 일이 여행사 가이드였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너에게 적합한 일일 것 같아서였다. 너는 내 말에 따라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갔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다고, 고등학교 때 놀지 말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들어갔을 거라며 너는 싱글벙글 웃고 또 웃었다. 


  여행사에 들어간 후 너는 처음엔 국내여행 안내를 맡아 하다가, 2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해외여행 관광객 인솔자로 살았다. 국내여행지로는 제주도와 울릉도를 주로 다녔고, 해외여행지로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지를 다녔다.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너는 그곳의 특산품 같은 걸 꼬박꼬박 사와서 나에게 주곤 했다. 이게 다 형님 덕분이라면서.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네 성격에는 여행사 가이드가 어울려 보인다는 말 한 마디를 해준 게 전부였는데, 몇 년이 지나도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그런 너의 마음이 나 또한 고마울 따름이었다. 선물과 함께 너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이야기보따리도 잔뜩 풀어놓았다. 그곳의 날씨, 풍경, 사람들, 예기치 않게 벌어진 일들…… 그리고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된 여자.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모든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게 너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관광객 중에서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너는 즉각 관계를 맺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았다. 첫사랑과 8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이후로 줄곧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나도 물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말 뿐이다. 어쩌면 그런 상반된 면 때문에 너와 나는 서로 끌렸고, 그래서 오래도록 만남을 이어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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