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 그와 나의 대화는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런 채로 2020년이 되었고, 나는 서른일곱, 그는 쉰두 살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온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코로나 사태가 싫지만은 않았다. 불필요한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필요한 만남의 경우에도 용건만 짧게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다. 회식은 사라졌다. 억지로 나가서 억지로 즐거운 척 연기를 해야 하는 악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세상, 서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세상이 이전의 세상보다 한결 마음에 들었다.
그런 세상일수록 사랑하는 사람과는 좀 더 친밀해지고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지진이 나도 전쟁이 나도 그는 변함없을 것 같았다.
20대 때 두 명의 남자를 사귄 적이 있다. 그러나 둘 다 오래 가지 못했다. 20대 초반에 사귀었던 남자는 기회가 닿는 대로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바람둥이였고, 20대 중반에 사귀었던 남자는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파괴적으로 돌변했다. 두 번의 경험을 거치고 난 이후로 나는 남자들을 멀리했다. 또 다른 남자를 만나 상처받기 싫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그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바람둥이도 아니고 파괴적인 성향도 전혀 아니다. 지극히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하다. 연애만 한다면야 상관없겠지만, 난 20대가 아니다. 2년이 지나면 마흔이 된다. 그런 생각이 나를 압박해 오고, 그러면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산수유꽃과 매화가 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이 되자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오빠, 이제 선택해. 더는 못 참겠어.”
그가 간판의 불을 끄고 카운터를 정리하고 있을 때 나는 담판을 지을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뭘?”
“나와 함께 하는 삶을 살 건지, 혼자서 이렇게 계속 살 건지.”
그가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둘 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런 말이 어딨어! 이제 좀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응? 이건 아니야. 재료비와 월세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도 거의 없고, 1년 365일 늘 먹는 거라곤 밥에다 김치, 두부, 감자 같은 게 전부고, 방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하고, 욕조도 없는 곳에서 샤워도 옹색하게 해야 하고, 여행도 한 번 안 다니고, 밥 먹고 나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선 맨날 책만 붙들고 있고…….”
그동안 참고 견디며 마음속에 쟁여두었던 불만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파스칼이 그랬지,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구석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크고 화려한 것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부풀리면 끝이 없어. 욕심은 필연적으로 타자에게 해를 입히게 되어 있고, 언젠가는 그 해가 욕심을 부풀린 자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번의 코로나 사태도 결국엔 인간의 욕심이…….”
“그만해, 그만! 이렇게 거지 같이 살면서 말만 그럴싸하게 하면 뭐해!” 그의 말을 자르며 나는 소리쳤다. 나도 깜짝 놀랐다. 내 안에 이런 공격성이 잠복해 있었다니……. 그러나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하자 주체할 길이 없었다. “자발적 가난은 무슨…… 얼어 죽을 자발적 가난! 능력 없는 걸 잘도 둘러대고 있네. 이런 상태로 가다간 독거노인으로 지내게 될 게 뻔한 주제에! 다시는 여기 안 올 거야. 넌 구제불능이야!”
그는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출입문을 세차게 열고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전봇대 뒤로 몸을 감춘 채 유리창 너머의 그를 본다. 그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그를 떠나면서 왜 나는 그렇게 함부로 말했을까. 사랑해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가. 나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무자비한 폭격을 가한 게 아닌가. 모르는 게 많은 내가 내 생각만 옳다는 듯이 윽박지르지 않았나.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사랑을 위함이 아니었고, 사랑을 가장한 욕망의 분출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억눌러 왔던 나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내 안에 가득했던 걸까……. 그의 말이 맞다. 모든 문제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마스크를 쓰고 살았던 것도 일종의 욕심이었다. 나의 실체를 가림으로써 허점을 들키고 싶지 않은 욕심. 타인들에게 나의 좋은 면만 비춰지기를 바라는 헛된 욕심. 그러나 그와의 만남을 통해 지극히 속물적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지 않았나.
사람과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조로운 일상을 만족해하며 살아간다면 코로나 사태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그의 말이 이제야 가슴에 와 닿는다. 자발적으로 그러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게 아닌가. 사람을 대할 때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자연을 아프게 하면 자연의 일부분인 사람에게 그 아픔이 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 또한 나 자신의 편의만을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둔 게 아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바짝 끌어당기려 했다. 단조로운 일상에는 만족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견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동안 읽은 책들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그에게서 들었지만 체화되지는 않은 생각들을 총동원하여 나는 세상과 세상 속의 나를 진단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도 커피숍에서도 머물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방구석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던 시간들이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슴에 와 닿는 정도로는 미흡하다. 가슴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그의 ‘최소주의’ 바이러스에 제대로 감염되리라, 다짐하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