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도, 커피숍에서도 머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에! 이런 세상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미쳐버리고 싶다. 2월말과 3월초에 급속하게 불어났던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두 자릿수로 줄어들었다가, 8월에 잠시 늘어났지만 하루에 200, 300명대였다. 그러곤 다시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500명대로 불어나는가 싶더니 며칠 뒤에는 1000명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1.5단계로, 얼마 지나지 않아 2단계로 격상되었는데, 언제 2.5단계, 3단계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는 책을 볼 수 없고, 예약 신청할 경우에 한해서만 책을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커피도 커피숍에 앉아서 마실 수 없게 되었으며, 테이크아웃만 허용되었다.
도서관과 커피숍은 내 삶에 있어서 숨구멍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휴일이면 도서관 자료실에 들어가서 찬찬히 책들을 둘러보고, 마음에 꽂히는 책을 집어 들어 대출을 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 그 맛에 휴일을 기다렸고, 그것은 평일을 견디는 힘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고,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외로움에 사무친다’는 표현이 절절히 몸에 와 닿았다.
그와 헤어진 지 8개월이 지났다. 6개월가량은 아무렇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도서관도 커피숍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자꾸만 그가 떠오른다.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그의 손길……. 살이 그립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싶다.
멀리서나마 그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밖으로 나왔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를 떠나면서 내뱉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몹시도 싫어하는 내가 그에게 험한 말을 쏟아붓지 않았던가. 나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 잘못을 6개월 동안은 떠올리지도 않았었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려서야 나의 잘못을 깨닫고 그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내 자신이 간사하게 느껴진다.
마스크를 쓴 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지나쳐 간다. 마스크. 나에겐 각별한 물건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한참 전부터 나는 마스크를 쓰고 살아왔다. 일종의 대인기피증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피했다. 왜? 왜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알고 싶어서 심리학책을 틈틈이 읽었고, 심리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나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려 노력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사는 게 힘들었다. 쉽게 상처를 받고, 혼자서 끙끙 앓게 된다. 그런 생활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자살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래서 예방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거리를 거닐 때나 쇼핑을 할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만남을 차단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간 혐오자’인 건 아니다. 입이 험한 사람들을 싫어할 뿐이다.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듯 입이 험하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직장에서야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 피하는 성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히려 쾌활한 모습을 내보이려 노력했다. 남들은 나에게, 어쩌면 그렇게 늘 웃으며 살 수 있느냐고 말하곤 했지만, 남의 속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퇴근을 하고 가면의 시간을 벗어나는 순간 몸이 쇳덩이처럼 무지근해진다.
되도록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교육행정직을 선택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 보니 행정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검토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게 변함없는 일과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해 보니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학교 행정에 관련된 잡다한 일을 모두 맡아서 해야 했고, 그 잡다한 일을 하려면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밀고 당기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교장의 뜻과 어긋날 때면 교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많은 기력이 들어갔다. 각 과목별 교사들과 함께 해야 하는 회식 자리는 왜 또 그리 많은 건지…….
2년 전 늦가을 무렵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와 네거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늘 다니던 큰길로 가지 않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좁은 길로 걸음을 옮겼다. 왜일까? 모르겠다. 문득 그러고 싶어졌다. 단층이나 2층의 주택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2차선 도로 가에는 미용실, 공방, 식당, 술집 등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는데, 커피숍도 하나 보였다. 이름이 ‘월든’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카운터 맞은편의 벽 앞에 놓인 책장에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정말 작은 공간이었다. 테이블이라고는 달랑 세 개가 전부였다.
과연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기는 할까, 싶은 염려가 끼어들었으나 나에게는 꼭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들어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가끔씩 테이크아웃 손님만 오고갔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둔 채로 남자는 늘 평온한 얼굴로 책을 읽었고, 거기에 내가 합류했다. 그런 편안함이 마음에 들어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매일처럼 가게 되었다.
그런 채로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자 의문이 일렁였다. 약간의 서운함 같은 감정도 올라왔다. 손님이 자주 오면 궁금한 거라도 한 마디 건넬만 하건만 그는 늘 한결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서오세요.”, 커피를 내주며 “좋은 시간 되세요.”, 나갈 때는 “안녕히 가세요.”가 전부였다. 사람들과의 빈번한 접촉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이지 호감을 느끼는 사람과의 다정다감한 대화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분명 이 공간도 주인 남자도 호감이 가는데…… 남자는 나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 건가? 사람보다 책을 더 좋아하나? 설마 인간 혐오자는 아니겠지? 머릿속에 부풀어 오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말을 건넸다.
“저기……”
남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느낌을 지우려고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