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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ul 22. 2021

특이한 여자 #3

  3


  언제부턴가 여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순지와 헤어지고나자 곧 마흔이었다. 특이한 여자를 골라서 만날 계제가 아니었다.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어떤 여자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마음이 맞으면 만나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재현은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결혼정보회사를 찾아갔고 돈을 지불했다. 그러나 특이한 구석이 없는 여자를 만나게 될 때마다 매번 권태롭기 마련이었다. 소요되는 비용이 아깝기만 했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여덟 번째로 만난 여자는 은행원이었는데, 특이한 구석도 없을뿐더러 마음도 전혀 맞지 않았고 짜증만 치밀어 올랐다. 어떤 타입을 좋아하느냐고 묻기에 특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은행원이 곧바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재현의 두 눈을 찔렀다. 그러곤 하는 말이, “재밌죠?”였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재현은 양손으로 두 눈을 덮고 문지르며 버럭 소리 질렀다. “특이한 걸 좋아한다고 하셔서…….” 은행원이 싱글거리며 응답했다. “그게 특이한 겁니까? 미친 거지!” 재현은 눈을 꿈쩍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곧바로 레스토랑을 나왔다. 아, 결혼정보회사 같은 곳을 통해서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 난 얼마나 못나고 한심한 인간이란 말인가, 한탄하면서.


  그런 채로 나이만 들어갔다. 몸 이곳저곳에서 무시로 고장이 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재현은 자신의 값어치가 조금씩 깎이고 그에 따라 가능성의 영역이 점점 좁아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흔둘, 마흔셋, 마흔넷…… 마흔이라는 이름의 강물은 소름이 끼치도록 빠르게 흘러갔다. 세상에 시간처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오십에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하나씩 빠져나가고 그 빈 공간을 ‘포기’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십을 한 달 남겨두고 있을 즈음에 재현은 특이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상태에서 더 이상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힘들어지자 재현은 모아놓은 돈을 몽땅 투자해 자신만의 바리스타 학원을 차리게 되었다. 인테리어 업자를 구하던 중 그녀를 알게 되었다. 대부분 남자가 하게 마련인 일을 여자가 하는 것부터가 특이했는데, 그녀는 일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모두 직접 만들어 썼다. 톱이든 망치든 전동드릴이든 부품을 구해서 조립해 쓴다는 것이었다. ‘모든 기성품을 거부한다’가 그녀의 모토였다. 옷과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얼굴부터가 역사책에서 보았던 저 먼 인류의 조상을 떠올리게 생겼고, 화장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다. 재현은 그녀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내가 오십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건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계시처럼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일을 끝마쳤을 때 재현은 비용을 지불하며 사랑을 고백했다. 열네 살이나 어린 여자가 설마 승낙하랴,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아요”라는 응답을 받았다. 스무 살 때 이후로는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잠깐씩 만나본 적은 있지만, 감당하기 힘들다는 둥 두렵다는 둥 하면서 남자들이 자신에게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재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명의 편리에 저당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야생적으로 생겼고 야생성을 잃지 않으려 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얼마나 귀한 존재란 말인가. 하긴 다른 남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서 자신에게 기회가 왔겠지만 말이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부터 남자들이 그녀에게 거부감을 가졌다는 이유를 재현은 실감하게 되었다. 그녀는 일할 때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10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라면 걸어 다녀야죠.”라고 했다. 실내 공간은 답답하다며 싫어했고 스카이라운지를 선호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는 혐오했다. 10층이든 20층이든 그녀와 함께라면 재현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래도 열네 살이나 어린 여자와 사귀는 게 어디냐 싶어서 재현은 그녀와 보조를 맞추려 애썼는데, 등산을 함께 가서는 한계에 부딪쳤다. 그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산길을 거부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건 진정한 의미의 등산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재현은 덤불을 헤치며 그녀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한참 가다보니 암벽이 막아섰는데, 그걸 타고 오르자는 것이었다. “아무 장비도 없이?” 재현은 기겁을 하며 반응했다. 20대나 30대라면 또 모르겠지만 40대도 아니고 50대에 그것은 무리였다. “십여 미터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요, 뭘.” 그녀가 시선을 위로 향한 채 높이를 가늠하며 피식 웃어 보였다. “아니, 잠깐, 잠깐만…….” 재현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나서 양팔을 내밀어 만류의 몸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우린 지금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지 철인 3종 경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내려가자.” “무슨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겁이 많은 게 아니라,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그럼 그냥 내려가세요. 저 혼자 올라가면 되죠, 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재현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그동안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줬잖아. 그렇지만 이건 아니야. 이번만큼은 내 뜻에 따라줬으면 좋겠다.” “먼저 내려가세요. 저는 올라갈 거예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암벽을 오르려 했다. 순간 재현은 그녀의 팔을 확 잡아채며 소리쳤다. “말 좀 들어!” 재현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얼얼함을 느끼며 풀썩 무릎을 꿇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가 재현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콱 깨문 상태였다. 사자에게 물린 영양처럼 재현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 뭐, 뭐 하는…… 거야.”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떼었고, 재현은 옷 윗부분을 내리고 어깻죽지를 살펴보았다. 잇자국이 문신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재현은 고개를 쳐들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반복하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는 사자처럼 보였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금 재현은 얼얼함을 느끼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했다. 이번엔 왼쪽 어깻죽지를 공격당한 것이었다. 재현은 몸에서 기운이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살덩이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밋밋하고 비리비리한 남자 만나는 거 나도 이제 신물이 난다!” 한참 만에 입을 떼고 나서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곤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재현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전생에 타잔이었음이 분명한 여자가 거침없이 위로 향하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특이한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 것은 그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영양이 사자와 사귀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게 아닌가. 평범함이야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평범함 속에서 사랑을 찾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깨달음이 몸과 마음을 왕창 욱신거리게 했다.


  6개월 뒤쯤 재현은 길거리에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주택가의 분리수거장에서 버려진 물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일이 없는 날이면 그녀가 종종 하는 취미생활이었다. 버려진 목재나 철재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 트럭에 싣고 집으로 가져가서 해체하고 조립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재현은 고물상에 온 줄 알았다. 마당 뿐 아니라 방 안에도 온통 고물투성이였다. 그런 방에서 재현은 그녀와 몇 번 관계를 가졌는데, 그때마다 몸이 조각조각 해체되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몸은 단단한 정도가 아니었다. 딴딴했다. 야생의 기운을 간직한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재현은 지니고 있는 정기를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싹싹 긁어모아야 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 뒤에는 적어도 열두 시간은 내리 자야 몸이 온전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몸 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흐물흐물했다. 


  버려진 물품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예리한 육감이 작용한 게 분명했다. 한 달 전에 차를 바꾸고, 선팅까지 짙게 하여 그녀가 알아볼 리 만무하건만 재현은 움찔했다. 그 눈빛만으로도 어느 한 군데 물어뜯긴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재현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에는 그녀를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멈춰서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그녀 뿐 아니라 특이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자와는 아예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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