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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Nov 04. 2020

9. 나무와 친해지는 방법

그중에 으뜸은 동네 산책?




저의 지인들은 함께 걷다 곧잘 "저 나무는 뭐야?" 하고 묻습니다. 솔직히 말해 작업하느라 공부하고 들여다본 나무가 아니라면 자연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식물들에 대해선 아직 지식이 부족합니다. 더 많이 공부해서 "저건 무슨 나무야. 아까 본 나무하고 친척이라 좀 비슷하지만 이 부분이 조금 달라."하고 답해주고 싶은 마음 한편에, 과연 종을 많이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이 든 적도 있습니다.



이 일을 막 시작할 무렵엔 작업한 나무의 종 정보만 학습하기에도 벅찼고, 작업하지 않은 나무라면 그런 정보를 알아도 쉽게 잊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서 종을 공부하는 게 무의미했습니다. ‘작업한 식물만이라도 확실히 알자’, ‘아는 것만 아는 척 하자’는 주의에 가까웠죠.



그런 태도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바뀌었습니다. 잎의 색상만 약간 다른 식물, 정말 비슷하게 생겼는데 개화 시기가 다른 식물, 꽃만 없으면 둘 간의 차이를 알 수 없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을 다루게 되면서 익힌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무엇보다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와 저 나무의 차이를 파악하려면 작업하지 않은 유사종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고, 그런 차이들을 세밀하게 볼 줄 아는 눈이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렇게 나무와 더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이 커져만 갈 때, 제가 택한 건 식물세밀화로 엮인 식물도감이었습니다. 식물세밀화는 씨앗과 잎, 줄기, 꽃 등 식물의 주요 기관을 아주 세세하게 그려낸 결과물인데, 식물세밀화가가 오랜 시간 관찰한 종의 특성을 담아낸 것이라 독자도 마치 그림 속 식물을 직접 관찰한 듯 생생하게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식물세밀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님의 책 <식물 산책>은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리하여 다채롭게 볼 줄 아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멀리서 '노란 꽃이네' 하며 지나쳤던 식물들은,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씀바귀' '괭이밥' '나도냉이 Barbarea orthoceras Ledeb.' '서양민들레' 등 고유한 이름을 가진 식물이 되고, 나는 그만큼 더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고 마는 공터가, 내게는 기록해야 할 식물이 너무도 많아, 다 그리기조차 버거운 정원이 되었다. - 이소영, <식물 산책>



식물 그림은 많이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그려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관리하던 식물이 적었을 때 식물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관리 식물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중단할 수밖에 없던 기록 방식이지만, 이때 그림으로 남긴 식물들은 잎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잎은 반질반질한지 광이 없는지, 잎의 뒷면은 무슨 색인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학교에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딱 이맘때 낙엽을 주워와 교실에서 관찰하던 꼬맹이 시절이 기억납니다.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록이 왜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변한 건지, 나무는 왜 잎을 떨구는지, 겨울에 나무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지 같은 과학 상식을 배우던 무렵이었을 것 같습니다.



집 앞에 있는 공원도 큰 마음 먹어야 나갈 수 있는 일상이라 '나무와 친해지는 방법' 마저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간접 체험을 위주로 적었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도 꼬맹이 때 겪은 장면을 기억하는 걸 보면, 만지고 보고 킁킁거리며 익힌 '체험 지식'이야말로 무언가와 가까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써 내려가며 들었습니다. 가볍게 동네 산책에 나서 그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주변 나무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쩌면 나무와 친해지는 가장 쉽고도 단순한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언급된 정보 더 보기


해외에서 나온 도감이나 그림책도 훌륭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나무들은 국내 도서에서 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국내 편집진이 엮은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추천드리는 몇 권의 책.


사진이 많은 식물도감은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편리하게 만날 수 있어 도서 추천을 대신합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고 산책에 나서고 싶어 지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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