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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크리티컬: CT 조영제 부작용

by 희나

나는 4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 검사를 받고 있다.

흉부와 골반에 이뤄지는 CT 촬영과 뼈스캔까지 늘 두 가지의 검사를 받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스케줄을 어떻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병원에 체류하는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차이가 난다.

최근 받았던 검사에서 병원이 잡아준 일정은

1. 뼈스캔 08:40 예약

2. CT 09:00 예약

이었고, 이 일정을 보고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딱 떨어지는 타임 테이블을 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시간표였으니.




나는 CT를 촬영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전처치 과정이 있다.

조영제 부작용에 대항하기 위한 주사를 맞는 바로 그 과정.


애초부터 이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4기 진단을 받은 후 그 언젠가 몇 개의 두드러기로 느닷없는 부작용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후처치로 주사 처방을 받고 두드러기가 가라앉는 것을 본 후 귀가했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아예 미리 처방을 받아서 CT 촬영 전 주사 바늘을 꽂은 다음 부작용 예방 주사를 맞고 1시간을 기다린 후에 검사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 검사를 위해 수립했던 병원에서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1. 08:00 병원 도착

2. 08:10 CT 전처치 완료

3. 08:25 뼈스캔 접수

4. 08:40 뼈스캔 주사 접종 완료

5. 09:10 CT 촬영

6. 10:00 아침 식사 및 약 복용

7. 11:00 뼈스캔 촬영

8. 11:30 병원 퇴장


아.

진짜 다시 봐도 비는 시간 별로 없는 정말 완벽한 타임 테이블.

(이래서 검사 예약 시간 기가 막히게 잡아주신 간호사 선생님께 무한대의 감사를 올렸었다.)

CT 전처치와 실제 검사 시간은 저기에서 다소간 달라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 일정에 차질을 줄 정도는 아닐 것으로 판단했기에 더더욱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병원에는 예정했던 시간에 맞게(그보다 좀 더 빠르게) 도착했다.

나의 존엄성을 해치는 부직포 바지는 입고 싶지 않아서 쇠 재질 1도 없는 트레이닝 복을 입고 갔기 때문에 브래지어만 신속히 탈의한 후 대기를 하였고, 나의 예상 시간보다는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계획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CT 전처치, 뼈스캔 주사 접종까지 모두 무사히 완료.

그리고 이어진 CT 촬영.

조영제 들어갈 때의 그 이상하게 퍼지는 뜨거움을 잘 견뎌내고 무사히 검사를 잘 마쳤다!

라고 생각했는데...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온몸의 가려움.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그야말로 전신에 가려움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나의 팔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일단 주사 바늘은 그대로 두고 물 마시면서 10분 정도 기다려보자고 하여 얼떨떨한 상태로 준비실을 나와 정수기 앞에서 물을 하염없이 마시고 있는데


이번에는 느닷없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머리를 빙 둘러가며 누군가 압박 붕대를 감은 것처럼 조이듯이 느껴지는 두통.

휴대폰을 꺼내 얼굴을 보니 얼굴이 부은 것과 더불어 눈까지 충혈되어 있었다.

함께 찾아온 온몸의 떨림과 어지럼증, 그리고 무력감.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라 그야말로 패닉이 왔고, 10분을 기다릴 정신이 전혀 아니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준비실로 다시 들어가서 "선생님 죄송한데 다시 한번 봐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그 사이 반 정도만 빨갰던 팔은 팔 전체가 빨개져 있었고, 머리는 좀 전보다 더 많이 아팠고, 떨리는 증상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숨 쉬는 것까지는 이상이 생기지 않은 것 같았는데, 저 모든 과정을 갑작스럽게 겪다 보니 내가 너무 놀라서 숨이 너무 얕게 쉬어지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곧바로 내 혈압을 재셨는데 168/98.

평소 본인 혈압 알고 있냐는 질문에 "저 정도로 높게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라고 대답을 했고, 선생님은 아마도 의사일 것으로 추정되는 분께 전화를 걸어 내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이미 전처치 과정에서 예방 주사를 2가지나 맞은 나는 추가적으로 무언가를 조치하기에는 애매한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뭘 더 하긴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은 밖에 앉아서 기다리면서 경과를 보자고 하셨고, 난 또다시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있었다.

시간을 보니 이미 10시가 훌쩍 넘은 상황.

아침을 먹어야 약을 먹을 수가 있는데 지금은 키스칼리와 페마라보다도 당장 몸에 나타난 증상이 가라앉는 걸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지만 아름다울 정도로 촤라락 수립되었던 나의 타임 테이블이 망가진 것은 꽤나 많이 속상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눈물이 조금씩 나기는 했지만 격하게 가려웠던 증상은 조금씩 가라앉는 게 느껴졌고, 무서웠던 두통과 떨림도 점차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팔의 열감과 발적. 그리고 어지럼증.

혹시? 하는 마음에 바짓단을 걷어보니..... 종아리도 아예 새빨개져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팔은 어느 한 군데 빠지는 곳 없이 전체적으로 다 빨갰다면 종아리는 아주 약간 일부분은 빨개지지 않은 상태여서 색의 대비가 확연하게 보인다는 정도?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이 나와서 내 상태를 체크하셨는데 완벽하게 다 빨개서 색 구분이 안 됐던 팔을 보고는 큰 반응이 없으셨다가 다리를 보여주니 "어머 상태가 아직 많이 심하네요"라고 화들짝 놀라셨다. (아니.. 팔만 봐도 이미 너무 심각했는데..... 얼룩덜룩하게 증상이 온 다리에 감사를 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오신 선생님 손에는 주사가 하나 들려 있었고, 상태가 쉬이 호전되지 않아 지금 주사를 한 대 더 놔드리기는 하는데 이거 외에는 더 이상 현 상태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다음 주 진료 볼 때 담당 교수님께 꼭 말씀드리고 알레르기 내과 진료를 한 번 받아보셔야 할 것 같다는 첨언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니 어느덧 뼈스캔 검사를 하러 갈 시간이 다 되었다. 그러니까 CT 검사 전 1시간, 검사 후 1시간까지 몽땅 조영제 부작용과 싸우기 위한 시간으로 쓴 것이다. 팔과 다리에 올라왔던 발적과 열감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처음보다는 많이 호전된 상태였기 때문에 검사 스케줄에 맞춰 핵의학과로 이동, 검사가 끝난 후 부리나케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지금까지는 부작용이라고 해도 두드러기 몇 개 올라오는 정도였어서 그저 '그런 증상이 생겨서 검사 1시간 전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게 불편하다'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현되니 내가 있는 곳이 병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무서웠다. 혹시나 더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체크하기 위해 계속 물을 마시며 후두가 부었는지를 확인하고, 얕은 숨이 쉬어지는 와중에도 숨 쉬는 것에 불편함이 느껴지지는 않는지를 살피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전혀 없었는데 주사 3대의 위력으로 증상들이 조금씩 호전되고 나니 그즈음부터는 복잡한 감정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다음부터는 CT 검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란 생각과는 별개로, 방금 전 겪었던 상황에 대한 정리 안 되는 마음이 자꾸만 올라오더란 말이지. 글로 정제를 해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문자 그대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병원 일정 이후에 동생을 만날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이것도 그냥 취소하고 집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당시 마음 상태로는 그랬어야 했겠지만,

요즘의 나는 에너지가 좀 생겼으니까!

이대로 귀가를 하고 나면 그 이후 내가 취할 모습이 어떤 것인지가 너무 뻔히 그려졌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동생에게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동생보다 30여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된 나.

밖에 있기 그럴 테니 근처 브런치 카페라도 들어가 있으라는 동생에게 나 지금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하니 너 올 때까지 햇빛 좀 쬐면서 기다리겠노라 이야기해 놓고는 마침 적당한 위치에 있는 벤치에 앉아 봄볕 제대로 받으며 앉아있었다. 버스 타면서부터 1곡 재생만 하고 있던 신시아 버전의 Defying Gravity를 들으며.

눈물이 자꾸 찔끔찔끔 나기는 했지만 확실히 햇빛을 받고 앉아 있으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호흡에 집중했고, 귀에 그야말로 때려 박고 있던(볼륨을 꽤나 크게 해놓고 있었다) 엘파바의 외침을 들으며 "그래! 본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와중에도 저렇게 날아오르겠다는데 이까짓 부작용 따위에 져서 이러고 있으면 되겠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일으켜 세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영제를 빨리 내 몸에서 내보내야 하니 중간중간 계속 미리 챙겨갔던 물을 마시면서 말이지.

(이것은 거의 뭐.. 난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 정도로 해석했다. 울면서도 끝끝내 마시고 있는 물이라니.)




최근 병원을 가면서 긴장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익숙하게 병원을 대해왔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이 강렬한 에피소드는 "너 암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마음을 놓는 건 좀 그래"라며 약한 경고장을 주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요즘 기분이 좋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나의 정체성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방암 4기 환자라는 것.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 부분을 놓치게 되면 그로 인한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잊지 말라는 경고 같은 그런.


경고받았고,

내 상황을 새삼 직면하여 정리했으니,

이제 남은 건 다시 균형을 잘 맞추며 생활하는 것.

신난다고 너무 내달리지 말고 적당히.

제발.


하여간 나는 참 이게 문제다.

도대체가 중간이 없어 중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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