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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타진! 안녕 아이알코돈!

by 희나

집 정리를 아주 전투적으로 했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집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인데, 한 달 조금 넘게 걸린 집 정리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듯싶다.

지겨울 만큼 많이 버렸고,

버리는 만큼 많이 반성했고,

반성한 만큼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는 요즘이다.

(그 외 부가적으로 당근 온도가 한 달 사이 7도나 올랐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을 보며 흐뭇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느 한 곳에 눈길이 꽂히고 말았다.

현관 앞 물건 담기용으로 둔 스툴 안에 들어있는

약. 약. 약.

진통제.jpg 이렇게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만감이 교차한다. 타진 네 녀석이 미친 통증으로부터 날 구해줬었는데 말이야.




4기 진단을 받은 당시의 나는 암성 통증을 아주 강력하게 겪고 있었다. 특정 자세에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그 모든 시간에 통증이 함께 하고 있었다.(침대에 눕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교수님께서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었는데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마약성 진통제".

진통제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12시간마다 한 번씩 먹어야 하는 서방정 진통제(타진)와 통증을 견디지 못할 때 추가로 복용할 수 있는 속효성 진통제(아이알코돈). 서방정 진통제는 시간을 잘 지켜서 먹어야 하며, 속효성 진통제는 하루에 최대로 복용할 수 있는 양이 있어 이를 잘 맞춰야 함을 안내받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그날.

타진은 시간 맞춰 복용했고, 아침을 열심히 챙겨 먹고는 통증의 재빠른 경감을 위하여 아이알코돈도 한 알 복용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후 먹었던 모든 것을 다 토해냈다.

가뜩이나 별로 먹은 것도 없었는데 그 와중에 다 토하기까지 하니 정신이 빠져나간 듯 멍하게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문득 내 상태에 대한 지독한 현실감이 밀려오면서 잠시 눈물 콧물을 쏟았었다.

이게 앞으로 내 남은 삶이겠구나 이러면서.

정신을 좀 추슬러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아이알코돈의 일반적인 부작용 중에 구토가 있었고, 내 몸은 아주 정직하게 그 부작용에 반응한 것이었으며, 그 이후로는 가급적이면 아이알코돈은 먹지 않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통증이 극에 달했던 병원 입원 시기, 간호사 선생님들께 "제발 진통제를 더 달라"며 애걸했던 드라마 같은 장면도 있었다.(생각해 보니 이 때는 구토도 하지 않았었다.)


나를 괴롭게 했던 아이알코돈에 비하여 타진은 그야말로 "통증에 지친 진단 초반 시절 나의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타진은 그 용량에 따라 5/2.5mg, 10/5mg, 20/10mg, 40/20mg까지 총 4가지가 있는데, 나는 가장 높은 용량을 제외한 나머지 용량을 모두 처방받았었다.(그래서 위에 찍어놓은 사진에도 3가지가 모두 있다.)

맨 처음 처방받았던 것은 가장 적은 용량의 5/2.5mg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당시 내가 겪고 있던 통증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사이사이 속효성 진통제가 추가로 필요했는데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니 그다음 진료 때는 용량을 조금 올려서 처방해 주셨었고, 그걸로도 부족하여 결국엔 20/10mg까지 빠른 기간 안에 용량이 쭉쭉쭉 올라갔었다.

그런데 통증에 맞는 용량을 복용하니 통증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저 작은 약이 내 몸에서 도대체 어떤 작용을 하고 다니기에 엄청난 통증을 그토록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것인지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 무서움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아이알코돈과는 달리 내가 바로 느낄 수 있는 부작용도 없었기 때문에 더 고마운 약이었다.


키스칼리가 본격적으로 몸 안에서 암세포들과 잘 싸워주기 시작하면서 각종 검사 결과에서도 그와 관련한 지표들이 좋은 쪽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교수님은 진통제 용량을 줄여보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가 어느 만큼 인지를 검사 결과만 보고서는 알 수 없었기에 원래 복용하던 용량과 그 아래 단계 용량을 함께 처방해 주시면서 "본인이 알아서 잘 조절해 보세요"라는 미션을 함께 주셨다.

타진 덕분에 통증을 느끼지 않고 지냈었는데 혹시 용량을 줄이면 다시 그 미친 통증이 날 덮쳐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당시에 매우 컸었다. 그러나 진통제를 평생 먹을 것도 아니고, 또 키스칼리가 몸에서 효과를 낸다는 것은 암세포들이 더 이상 활동을 못하게 잘 막아주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암으로 인한 통증 역시 경감되고 있는 것이라 믿으며 조금씩 용량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증을 느끼는 것 없이 무사히 용량을 줄여나갈 수 있었고, 진단 후 7개월간 함께 했던 진통제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아이알코돈은 처방받은 후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에, 타진은 두 가지 용량을 중복 처방받았기 때문에 위 사진에 보는 것처럼 약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야 4기 암환자.

언제 또다시 통증이 격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람.

그렇기 때문에 상비약으로 저 약들이 내 주변에 있는 것이 나의 심신 안정을 위해 매우 필요했고, 이것이 저 약들이 현관 앞 스툴 안에 잘 모셔진 이유였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약들.

기간을 한 번도 계산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며 세어보니... 2년간 저 자리에 있었던 거구나.


잠시 생각을 해봤다.

과연 저 약들을 내가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그러다 문득 통으로 받은 타진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눈에 들어온 사용기한.

... 작년에 이미 지났네. 허허허.

몇 개월이나 지난 사용기한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안임을 깨닫고는(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었던 것이었다) 주섬주섬 종이 가방 안에 담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폐의약품 수거함이 어디 있는지를 찾다가 "그런데 마약성 진통제도 일반 폐의약품이랑 같이 버려도 되는 건가?"라는 궁금증이 들어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아....... 보건소로 가지고 오라니요....... ;ㅅ;...


찾아보니 나처럼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후 남는 약을 집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그러니 이와 관련한 연구도 있고 관련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다른 것도 아니고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약이 남았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다. 이미 2012년에도 사용하지 않는 마약성 진통제를 무상으로 다른 환자에게 제공하는 등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으나 2025년의 나 역시 이 약 폐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직접 찾아봐야 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좀 더 적극적인 다른 대책이 필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기 싫다'라는 귀차니즘보다 '이 약들을 이제는 보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강했던 나는 기어이 오늘 보건소로 향했고, 그 덕에 "이렇게 직접 오시고 가져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인사 한 자락을 들을 수 있었다.

별 거 아닌데 뭔가 중요한 큰 일을 한 것만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이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긴 하겠지만

가급적이면 오래, 한참 지난 후에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통증에서 구해줘서,

그동안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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