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가족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가 4기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이면 어지간히 다 알고 있고, 느슨하게라도 SNS를 하고 있다면 태그로 내 상태를 가끔 올리니 보기 싫어도 보게 되기는 할 테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이 자가 4기 암 진단을 받았다더라"라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할 것이라 예상해 본다.
왜냐면.. 병기와 당최 매칭이 안 될 정도로 너무 밝아 보일 거거든 내가.
내가 처음부터 밝았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기수와 관계없이 "당신은 암에 당첨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우와, 그래요?! 대박적!!"이라며 즐거워할 사람은 단언하건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최근 암 진단을 받았는데 굉장히 밝다면 그분의 정신 건강에 지금 빨간 불이 제대로 켜진 것이니 집중적인 케어가 필요하다. (이는 15년 전 내가 그랬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15년 전 1기 진단받았을 때도 그랬었는데 심지어 4기 진단을 받은 상황에서 어찌 멘털이 온전할 수 있을까. 대학원 휴학 신청 버튼 클릭하면서 '이제 좀 사는 게 재미있는데 어찌 이렇게 또 다 빼앗아 가는가'라며 컴퓨터 앞에서 펑펑 울고, 속효성 마약성 진통제 먹고 그 길로 바로 화장실 쫓아가서 다 토하고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을 향해 가는구나'라며 또 펑펑 울고, 아침마다 먹는 키스칼리를 보며 '이 조그마한 약 3알에 앞으로 내 남은 삶이 달려있구나'라는 생각에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또 눈물을 쏟아내고, 크리스마스트리 보면서 '남들은 지금 이렇게 즐거운데 나는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이러고 있는가'라며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을 붙들고 또 한참을 울던 사람이 나였는데.
지금이야 지난 저 시간들을 "주접 타임"이라 명명하며 웃는 얼굴로 회상하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다. 여러 매체에서 그리는 것처럼 "4기 암환자"라고 하면 다크 서클이 그야말로 턱 끝까지 내려오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이 쭉쭉 빠지며, 말할 기운도 없어서 늘 누워 지내다가 어느 날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니.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멘털을 끌어올리게 된 계기는 '대학원 복학'이었다. 발병 전처럼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면 현실적인 이유로 일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복직을 한 달 여 앞둔 시점부터는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하필 학교가 집과 가까워서 동네를 나서기만 해도 스쿨버스를 수시로 봤었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핑핑 고이기 일쑤였다. 이랬던 내게 "누나가 진짜로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라는 동생의 진심 어린 응원은 '앞으로 내 남은 인생에 공부는 더 이상 없겠구나'라며 슬퍼했던 내가 '무모해 보여도 용기를 내볼 수 있는 건가?'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학교로 돌아간다는 것은 '졸업할 때까지 경제 활동을 중단하겠다'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는데 심지어 이걸 1년 넘게 쓰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마음으로 결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생의 입장은 확고했다.
1. 일단 누나가 대학원 공부를 꼭 마치고 싶어 하니 그걸 해봐야 하지 않겠나
2. 대학원 졸업을 하고 나면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고, 그 새로운 문이 누나의 인생을 이전과는 아예 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3. 만약 누나 말대로 누나가 "곧 죽을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면, 그야말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라도 남은 시간 동안은 누나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나
사실 이런저런 고민 없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의 관점에서 선택해 보라고 했으면 망설임 없이 대학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회사로 돌아가야겠다는 선택을 했던 이유는 딱 하나, '그래야만 앞으로 내가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실 때문에 앞으로는 꿈을 영영 포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우울해졌었는데 그런 내게 동생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었다.
동생의 저 강력한 설득을 들었던 당시 내 마음에 조금씩 피어났던 느낌을 지금까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 정말 학교로 돌아가도 되는 건가?
이 선택은 정말 말도 안 되고 철없는 것이라 여겼었는데, 나 그냥 철없는 선택을 해도 되는 건가?
나 진짜 대학원 졸업하고 석사 될 수 있는 건가?
이건,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