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한겨레에 연재했던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엮은 책이다.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
부록 반복의 묘
'고통의 각'을 보았을 때,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말 '~각'인줄 알았다. 점, 선, 원...을 보며 수학 용어인가? 했다가 마지막 '반복의 묘'에서 소주제 전체가 미술 조형 요소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표지를 다시 보니 박서보의 '묘법'이다. 박서보는 1970년대 우리나라 단색화 대표작가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반복의 묘'이다. 한지에 물감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 연필선을 긋고 그걸 지운 후 또 물감을 바르고 연필선을 긋는 반복 행위를 통해 물성을 드러낸다.
단색화는 1960년대 서양의 미니멀 아트 영향을 받았지만, 반복되는 무목적적 행위를 통해 금욕주의적 비물질의 정신을 추구한다. 절제된 감정의 비개성적인 미니멀 아트와 달리 한국의 고유 정체성을 반영하기에 미니멀 아트와 구분 지어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구도자의 자세로 반복적 노동으로 만들어낸 작품, 묘법은 '인생의 역사' 표지로 너무 잘 어울린다.
단색화는 1960년대 서양의 미니멀 아트 영향을 받았지만, 반복되는 무목적적 행위를 통해 금욕주의적 비물질의 정신을 추구한다. 절제된 감정의 비개성적인 미니멀 아트와 달리 한국의 고유 정체성을 반영하기에 미니멀 아트와 구분 지어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구도자의 자세로 반복적 노동으로 만들어낸 작품, 묘법은 '인생의 역사' 표지로 너무 잘 어울린다.
인생의 역사 (신형철)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 vs 상대가 필요한 사람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사실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시였고, 훗날 그가 기억에 의지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연인 베를라우는 당시 내전 중인 스페인에 머무르고 있었다. 베를라우는 브레히트를 사랑했고, 브레히트는 그녀가 필요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기에, 베를라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지켜야 했다. 늘 정신을 차리고 걸어야 했다. 내리는 빗방울까지 두려워하면서.
다소 이기적인 이 사랑에 대하여, 저자 신형철은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비균형적인 사랑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바로, 부모와 자식 관계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부모가 필요하다.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자기 자신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나를 지키는 것이 곧 내 아이를 지키는 것이므로.
몇 년 전 크게 아팠을 때 같은 병실에 12년 만에 새로운 암에 걸린 분이 계셨다. 12년 전에는 아이가 어렸기에 어떻게든 자기는 살아야만 했다고, 그래서 힘든 항암도 견뎌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다 자라 결혼했다. 이제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항암을 또 할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부모는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기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기억해야 한다.
가장 오래된 인생의 낯익음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 아내)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그 밤으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다. 이상은은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김훈은 <공무도하>를 썼고 진모영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그들에게도 <공무도하가>는 각별하다는 뜻이다. 상고시가로 함께 묶이는 <구지가>나 <황조가>와 달리 <공무도하가>만이 언제나 나를 사무치게 한다.
'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p 36)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욥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
기독교에서 욥은 순종을 나타낸다. 무조건적인 순종.
신은 욥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욥에게 고통을 준다. 욥은 당신은 너무 잔인하다고 신에게 울부짖지만, 곧 굴복하여 회개하고 순종한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불행의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실패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혹은 네가 교만했기 때문에라고 이유를 붙인다.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 쉬게 할 수 있다면?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 63~64)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고전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은 다음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 단계는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니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부정'이다. 그러다 더는 부정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왜 하필 나인가 하는 '분노'를 느낀다. 그 뒤에는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테니 한 번만 더 (혹은 조금만 더) 기회를 달라는 것.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거대한 상실감이 '우울'을 불러온다. 그러고는 마지막, '수용'의 단계가 온다. "감정의 공백기"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텅 빈 마음의 상태.
(p 153)
이 나날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단편 애니메이션 <작은 큐브로 만든 집>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조금씩 물에 잠기는 마을에서 주인공 독거노인은 한 층 씩 위로 집을 새로 지어 옮겨가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아래층으로 떨어뜨린 파이프를 찾으러 잠수 장비를 갖추고 내려간다. 파이프는 금세 찾았지만 옛 추억이 떠올라 조금씩 조금씩 더 내려가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이면서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국 시라고 한다.
2022학년도 고려대 면접 전형 제시문에도 나왔었다. 마지막 연에 대해, 화자가 다음과 같이 표현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시오.라고.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 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오래전 텔레비전 예능처럼 둘 중 하나의 길만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유한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한 사람의 고독과 아름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또 다른 해설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나도 이 네 줄이 좀 알쏭달쏭했다. 두 길에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길로 갔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를 원하고, 또 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는 것.' 그래서 화자는 훗날 이날의 선택을 다소 미화된 방식으로 회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한다고.
이 내용은 '우리가 겪는 고통에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라는 욥기 해설과도 연결된다.
고려대 선행학습 영향평가에 나와있는 예시 답안도 이와 유사하다.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미래에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후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과거 선택을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비온다니 꽃 지겠다
비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준의 시로 마무리된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이런 심상한 일상의 대화가 시가 될 수 있다니.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장마' 부분
시대 의식 결여
마지막으로, 박서보를 검색하다가 작년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박서보는 5,16 군부독재에 순응하고 기록화 사업에 가담했으며, 1970년대 박정희 유신시절 관변미술계 수장이었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했다고 한다.
광주 예술인은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의 정신과 위배되는 '박서보 예술상' 폐지를 주장했고, '박서보 예술상'은 신설되자마자 1회 만으로 폐지되어 남은 상금은 박서보 재단으로 다시 반환되었다. 그의 작품만 보았을 때는 고고한 시대정신이 느껴졌는데, 실제 그의 삶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노동집약적인 그의 작품은 말년에 조수의 도움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박서보는 ‘작가가 시대 상황을 너무 의식하면 의식 과잉이 되고 작품은 죽는다’고 말했다. 박서보는 시대 상황과 예술 작품을 1 대 1로 연결하는 단계를 뛰어넘었고, 묘법은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박서보:단색화에 담긴 삶과 예술'(케이트 림)
예술가는 그 시대정신을 반영해야만 하는지, 혹 시대 상황을 의식하면 작품은 죽는 건인지. 예술가를 평가할 때 그 작품으로만 보아야 하는지, 그의 삶도 중요한지,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예술가의 예술세계나 작품만큼 인격이나 집안, 사상, 집단, 학연 등 주변에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에게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의 사생활에는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비엔날레와 박서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광주민주화 운동 중심지 중 하나인 조선대 교수 저자 신형철은 박서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