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정각 구로구를 출발해 강남으로 가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다. 강남의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사람이 탄다. 이 책은 6411번 버스 미화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현장 속 노동자 이야기를 연재했던 '6411의 목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자조적인 제목처럼,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주어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최저 임금이 오르고 기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외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학벌과 직업으로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고, 힘든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존중받고, 고용 안정 속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덧붙여, 다양한 직업 군상을 살펴볼 수 있다. 평소 궁금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일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으며, 전혀 몰랐던 분야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각 직업이 하는 일과 함께 상세한 근무 상황과 고용 구조, 소득이 나와 있어 학생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다.
각 노동자의 발언을 담은 소제목이 인상적이다.
타투, 이 땅에선 무조건 '불법'
(타투이스트)
타투가 불법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타투를 받는 건 불법이 아니고, 타투를 하는 것만 불법이라는 이상한 궤변이다.
성매매는 폭력이고 착취일 뿐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활동가)
성매매는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돼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쉬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꿈은 성매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성매매하고 있지만 적어도 좋아서 성매매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p 59)
'메이드 인 베트남' 아녜요, 나는 '나'예요
(부티탄화,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메이드 인 베트남' 아녜요. 나는 '나'예요. 공짜로 돌릴 수 있는 기계 아니에요.
나, 함께 잘 살고 싶어요.
돌봄 노동자도 돌봄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 수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을 돌보는 이들의 인권과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곳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도 있다는 사실을.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든 전문직
(김문희, 요양보호사)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 많이 힘들다. 아무리 노인이라도 성인 남성을 여성이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는 상황 속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방송 예능국에는 웃음소리가 없다
(원, 예능작가)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지난함을 담고 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출연자와 인터뷰를 하고 촬영 장소를 섭외하고 녹화 내내 대기하고 현장 정리도 한다. 영상에 들어가는 자막도 작가의 몫이 된다. 이렇게 고생을 해도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6개월이 넘는 기획 기간 도중에 프로그램이 무산되면 작가료도 지원되지 않는다.
꿈을 먹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다
(조영근, 배우 겸 연출, 극단 폼 대표)
가장 낮은 연봉 랭킹 5위 안에 드는 연극 현실을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공연시간 기준으로 급여가 지급된다는 것이다. 긴 연습 기간 동안 공연이 취소되거나 중단되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공연자 출연료와 스태프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은 공연시간만이 아니라,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무대에 서는 두 시간을 위해 한 달, 두 달, 석 달씩, 육체, 감정 노동을 하는 예술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방송계와 함께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열정페이 문화'가 만연한 곳이다. 우리가 재미있게 보는 예능국에는 웃음소리가 없고, 꿈을 먹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 이유
(오주연, 힐데와소피 대표)
어려운 출판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출판 일은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대에, 책이 출판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우리 사회가 경제적 논리뿐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도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소외된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주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라는 용어에 육체노동을 기반으로 한 힘든 일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로 인정해야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와 대가를 주장할 수 있다.
교사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근로자의 날에 급식실 노동자는 쉬지만 교사는 출근한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민원과 부당한 일들을 교사의 '사명감'으로 참고 견뎌야 한다.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을 가지려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차별받는 사람 없이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인정받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