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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29. 2023

31. 부적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지금쯤 이 말을 해준 사람은 다 잊고 살 텐데, 나는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말들이 몇 개 있다. 심지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었을 이들의 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말을 지나치게 오래 간직하고 사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은. 


그중에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민아 씨는 시인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어떤 게 좋은 건지, 왜 좋은 건지 잘 아는 사람이에요.” 


해야 하는 취업은 안 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시를 배우러 다녔다. 아마 그 꿈은 접는 게 좋겠다는 뜻으로 했을지도 모를 말인데, 당시에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므로 ‘시인이 될 수도 있어요.’ 에 방점을 찍고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나에게 더 기쁨이었던 게 무엇인지 알게 된 후로는 ‘어떤 게 좋은지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부적처럼 쥐고 산다. 그래 이거면 됐지, 하면서. 이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나, 하면서. 이제야 선생님의 말이 제대로 작동하는 듯하다. 




좋은 것이 뭔지 알면 일단 나 하나는 되게 좋다. 

좋다,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좋아할 수 있어서 더 좋다. 

그렇게 좋은 것을 잔뜩 보면 좋은 것이 만들고 싶어진다.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일을 벌인다. 

<행복편지>도 그렇게 해서 벌인 일이다. 

책을 읽다가, 좋다가, 좋은 것이 하고 싶어서.


그때 만약 “당신은 시인이 될 자질이 있어요. 재능이 있단 얘기죠.”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기는. 엄청 좋았겠지. 정말 좋아서 나한테 그런 재능이있는지 몰랐다면서 으스대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될 수 있겠단 말을 쥐고 살았더라도 시인이 되는 건 다른 문제였을 거다. 뭔가 된다는 건, 누군가 믿어준다고 해서만 되는 게 아니니까. 



재능 없는 사람이 뭔가 하려면, 그건 ‘좋은 것이 하고 싶다’는 마음의 불을 계속 키우는 일이다. 그 마음이 멀리, 오래 걷게 해줄 테니까. 좋은 것은 언젠가 누군가, 혹은 그 모두가 아니라도 적어도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일 테니까. 


그러니 내 인생의 재료로 쓸 말에 힘을 보탠다. 이게 나의 생존방식이라면 방식이다. 그런 이유로 재능 없다는 말이 이제 더는 예전만큼 아주 괴롭지 않다. 조금만 괴롭다. 





궁금하다. 당신의 부적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큰 의미 없이 날아든 가벼운 말에 의지하고 살까. 

궁금하다. 나는 언제까지 이 말에 의지하고 살까. 




2022년 11월 10일 목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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