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어쩐지 11월 내내 따뜻하다 했다. 오늘도 따뜻하다고? 아니 오늘도? 어라 내일도? 그런 식으로 30일을 살았더니 올해는 겨울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뭐야.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우리를 좀 기다리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일은 있어도 할 일은 다 하는구나.
파랗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파란 하늘, 분명 지난주까지는 멀쩡히 매달려있던 나뭇잎은 언제 다 떨군 건지 앙상한 나뭇가지, 보도블록 군데군데 보이는 얼음까지. 그래, 겨울이 안 올 순 없지.
그러면 이제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어딜 가던지 따뜻하게 입고 신을 것. 편한 신발을 신을 것. 그러나 실내는 아찔하게 더울 수 있으므로 벗을 수 있는 옷을 입을 것. 누군가 너는 인간이야? 양파야? 물어볼 정도로 겹겹이 입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본인의 기초 체온과 평소 온도 감지 정도에 따라 적당히 조절할 것. 얇게 입어야 한다면 목도리는 꼭 챙길 것. 자신이 편도선이 약하다면 더더욱.
본가에서 엄마와 살 때는 매일 이런 잔소리를 들었다.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그거 그 스타킹 너무 얇지 않냐, 겨울에는 패딩 좀 툭툭한 걸로 사 입어라 (사줘 엄마..), 목도리는 왜 맨날 두고 가냐, 겨울에 추운데 늦게까지 술 먹고 돌아다니지 말고 어?
이제 나는 엄마의 말대로 따뜻하게 입고 다닌다. 좀 심하다 싶어질 정도로. 코트는 어제 자로 마무리했다. 이제 무조건 패딩이다. 대신 엄마 말 하나만 빼고.
나는 늦게까지, 어디든 돌아다니려고 따뜻하게 입는다. 추워도, 바람이 쌩쌩 불어도, 심지어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이 와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맛있는 밥집에서 술을 먹고 나왔는데, 저기 한 500미터를 걸으면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고 한다. 완전 무장에 편한 신발을 신었다면 500미터 그쯤이야 기분 좋은 술기운에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한 신발과 얄팍한 옷은 겨울의 나를 소심하게 만든다. 동선도, 아이디어도, 재미도 움츠러든다. 설령 일행을 따라가더라도 한 걸음에 한 번씩 투덜거리게 되겠지. 어우 추워. 어우 발 아파. 아직도 도착 안 했어? 많이 남았어? 어우 그냥 여기 어디 가까운데 아무 데나 가자. (이건 어쨌거나 투덜왕 박민아의 이야기다)
겨울은 춥지만, 언제나 추웠고 내년에도 추울 거다. 그런 겨울에 내가 하고 싶은 건 입김을 내 뿜고 실없이 웃으며 따뜻한 옷을 방패 삼아 어디든 걸어가는 것. 그러다 눈에 띄는 술집에 문득 들어가는 것. 손으로 외투를 벗으면서 눈으로는 메뉴를 살피고 뭘 시켜볼까 고민하는 것. 쓰고 보니 그냥 술 마시러 나가고 싶다는 말 같지만, 아무튼 어쨌든 겨울의 모험가가 되는 것.
아주 따뜻하게 입고 몹시 추운 곳에 가고 싶다.
2022년 12월 06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