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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04. 2020

나보다 나은 사람

너는 만 여덟살이 된지 삼개월에 접어들었다.

요즘은 “나도 알아”는 말을 자주 하더라.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모르는거 빼고 다 아는 오쎄라니까”

늘 돌아오는 말.


본인이 한국말을 꽤 잘 한다고 생각하는 너지만 사실은 전부 영어 단어에 조사만 붙여서 문장을 하는 식인데... 사실 까막눈에 가까운 본인이란걸...


이 글을 시작하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너를 다 키워놓고 시작한 감이 있는 육아일기지만, 그리고 이 글이 쉽게 끝날지도 모르지만 너와 나의 시간을 기록해야겠다 마음 먹었을때 네가 읽을 것이 두려워지는 마음은 가장 먼저 직면한 사실이었다.


너는 오래도록 이 글을 못 볼 것이다.

너는 엄마가 쓰는 글을 늘 궁금해하지만

그 책을 읽는 날이 오려면 너는 한국어를 읽고 쓰는 연습을 오래 한 뒤에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

나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일때가 많다.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 내가 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다 알 길 없다. 그러나 너는 나보다 나은지 오래되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한지가 오래되었단 말이다.

그것이 일곱해 너를 만나고 같이 산 동안에 내가 가진 자랑스러움이다. 무엇이 나은 사람이냐 물으면 그 자를 붙잡고 오래도록 말할 수 있다.


“사람 흉을 안봐요

남의 못남을 잘 모르고요

친구가 싫어할만한 말은 앞에서 안하고 생각해뒀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 무슨 생각이 났을때 가끔 한마디씩 말해요. 그것도 차 안에 엄마랑 둘이 있을때만.

친구가 얘기할때 넋을 놓고 보고 아주 쎄게 웃어줘요. 친구가 하고 싶은 놀이를 먼저 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자고해요.

엄마가 영어를 잘 못해도 창피해하지 않아요. 자기가 부끄러울때면 엄마보고 저 대신 말하라고 시킬때도 많거든요.

엄마랑 아빠가 부부싸움하면

‘엄마 나는 아빠에게 가야겠어. 아빠가 혼자있으면 마음이 아파.’ 이렇게 말해요”


비판적 사고가 똑똑함의 첫걸음이라 평생 믿고 살던 나는 남의 흠도 잘 보여서 늘 잘난척하느라 바빴는데 , 너는 꼭 그런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던 그 사람의 그 모습을 재미있어한다. 진심으로 웃는 너를 옆에서 볼 때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래도록

네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란걸 믿고 살고 싶다.

내 부모도 그런 믿음으로 나를 키웠을 것이라 싶었다. 그 믿음은 결국 허영일지라도 뿌리가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너를 돌보며 나의 누추한 일상을 주워 담으리라 믿는다.

내 부모의 지난한 삶이 반짝거리진 않았어도 아름다웠듯이.

너를 보며 기록하는 일기는 육아일기라 이름짓지만 뒷면엔 나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일이란걸 나는 알테지.


어제부터 가을이 왔던데

바스락거리는 볕 아래서 바삭바삭 씹히는 너의 수다가 내 차안에 꽉 차리라 그리하여 꼼짝없이 갇힐것을 기대하며,


난방텐트 안에 잠든 너 이제 굿나잇

그리고 육아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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