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by 금교준

커피를 내리는데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갈린 원두를 평평하게 누르고 높은 수압으로 속을 추출하는 일. 점점 능숙해지는 느낌이 제법 쏠쏠한 기분으로 만들어준다. 요즘은 카페의 마지막을 지키기도 한다. 하루 동안 사용한 집기를 씻고, 다시 쓰기 좋도록 말끔하게 정리한다.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것들을 모아다 밖에 내놓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한가득 가져다 놓으면 홀가분하다. 매장 마감은 통유리의 블라인드를 치는 것으로 끝난다. 하나씩 내려갈수록 슥슥 소리가 커지면서 공간이 닫힌다. 그럼 넓고 밀폐된 공간에 혼자 남게 되고, 나는 그런 상황을 제법 아늑하다고 여긴다.


전에는 혼자 있는 걸 싫어했다. 집에 아무도 없으면 누구든 찾아다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너는 잘 지내? 그런 실없는 문장을 건네면서 어서 빈 공간을 채워주길 바랬다. 나는 외로운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경아는 그런 나를 버거워했다. 사람이 혼자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일 분 일 초도 못 견디면 어떻게 하냐고. 자기는 그런 사람 별로라고 했다. 우린 이미 연애하는 사인데. 그럼 나더러 헤어져달라는 거야, 란 말이 목구멍 앞에서 덜컥 걸렸다.


경아도 카페에서 일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그녀에게 보러 가도 되냐고 버릇처럼 물었다. 그녀는 네가 여길 왜 오냐고. 불편하다고.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처음엔 그런 털털한 모습이 좋았다. 나라는 존재를 거리낌 없이 여기는 모습.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게 퍽 멋있어 보였던 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관심이 없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내가 좋은 게 아니구나. 그럼 뭘 좋아하는 거지. 나를 왜 만나는 거지. 그러고 보면 만나자는 말도, 서운하다는 말도, 이거 해보자는 말도 다 내가 했다. 그녀가 먼저 제안하는 일은 없었다. 그만하자고 하면 이 관계는 끝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연이었나. 그녀가 내게 경아가 너를 지겨워해, 라고 말했을 때. 그걸 들은 내 표정을 묘사해보자면... 구겨진 패브릭 포스터, 뽑다가 턱턱 걸려서 어중간하게 뜯긴 휴지조각, 뭐 그정도일 거였다. 경아에게 뭐해? 라고 문자를 보냈을 때 그녀가 세 시간 정도 후에 밥 먹었어, 라고 보냈던 게 기억난다. 우리 그만하자. 하니까 그녀는 그러자, 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 사이가 이렇게 간단히 끝날 거였나 싶었다.


어느새 마지막 블라인드를 내렸다. 이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할 줄 알게 됐는데. 경아는 여전하려나. “그러자.” 그 말이 공간 곳곳을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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