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가 떨렸다. 이번 일을 시작한 후로 이런 걸 느낄 정도로 힘겨운 건 처음이었다. 화면 위에 당당히 적혀 있는 매출액수가 유난히 바빴던 오늘을 증명했다. 250. 그 수가 다른 것들보다 커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익숙했다. 세 자리 숫자는 무언갈 끄집어내려는 듯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대개 이런 것들은 가슴 한쪽이 도려내어졌던 경험이나 누군가 나 방금 숲에서 공룡을 닮은 까마귀를 봤어, 하는 걸 들었을 때처럼 인상 깊었던 일이 연관된 게 분명했다.
재희. 그래, 그녀의 발 사이즈가 245였다. 학창 시절에 반올림하면 250이네, 하고 놀림을 받았다던 게 기억난다. 그녀는 나와 처음으로 커플 아이템을 맞춘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엔 그녀도 나도 연애 경험이 갓난아기 수준이었던 터라 우린 선물의 의미 같은 걸 곧잘 믿었다. 목도리는 당신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뜻이래. 신발을 주면 상대방이 그걸 신고 곁을 떠난대. 반지는 영원히 함께해 달라는 거라더라.
“자, 이거 선물.”
그녀가 말했다. 커플 신발이었다. 나는 기념일이 되려면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무렴 선물인데 기분 좋게 신어야지, 했다. 나는 옷이나 신발 따위를 자주 사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 선물로 그런 걸 주면 주구장창 입고 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때도 그랬다. 일을 하든, 데이트를 하든, 친구를 만나든. 그녀가 준 신발을 신었다.
“다른 것도 좀 신어. 벌써 더러워졌잖아. 옷도 좀 사고.”
재희는 자주 채근했다. 매번 똑같은 신발, 며칠만 지나면 똑같은 패턴의 옷차림. 그런 게 사랑하는 사람의 정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거라면서. 그녀는 끝내 더 이상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던가. 재-희. 두 음절의 고유명사는 세 자리 숫자를 보면 눈앞에 아른거렸다. 250. 누누이 기억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아픔이나 상처를 남겨야 하는 건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저렸다. 재-희. 하고 입술을 버둥거려본다. 목소리가 떨렸다.